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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Writings

Black Metal Horde

많은 경우에, 블랙메틀에서 'horde' 라는 단어는 '밴드' 라는 용어 대신에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용어의 본래적 의미에 따른 것은 아닐 것이다. 원맨 밴드의 경우에도 'hordes' 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용어가, 더 많은 경우, 폭력성/야만성 내지는 남성성의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쉬이 알 수 있을 일이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운 점은, 언제부터 이 '씬' 에 속해 있는 친구들이 자기들을 'horde' 라고 칭하게 되었는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horde' 가 이런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실 이 또한 불확실할 것이다. 'horde' 는 본래 터키어 단어로, 왕이 거주하는 곳, 또는 천막(유목 민족의 용어라고 생각하면 이해될 것이다)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칭기즈 칸의 원정이 이 단어를 서구에도 퍼뜨린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 'horde' 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을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용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명확하다. 폭력성/야만성의 메타포로 사용될 정도로 동적인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유목 민족의 모습으로는 이례적일 정지, 또는 정주의 이미지는 이보다는 훨씬 정적인 것이다.

그러다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19세기, Darwin은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에서 'horde' 를 원시인들의 집단과, 그보다 좀 더 원숭이에 가까웠을 인류의 선조를 가리키면서 사용한다. 문명의 발흥지가 어디였건, 모든 문명이 유래하였을 그들의 원시적 집단은 자연 선택의 결과였다는 것이 아마 책의 요지일 것이다(책을 본 지가 좀 오래 됐다). 물론 이에, 또한 잘 알려진 성선택의 결과가 더해지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진화론과 자연 선택의 진위는 많이 논쟁되는 문제인 것 같다(특히 종교계와 관련하여). 어쨌든, 이러한 이야기가 타당성의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인간성의 탄생에 대한 하나의 신화로서 작용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신화 속의 'horde' 가 보여주는 폭력성은 명확하다.


Freud는 이러한 Darwin의 텍스트를 "토템과 터부(Totem und Tabu)" 에서 인용하면서 그 나름의 신화 풀이를 계속한다. 

"...우리가 Darwin의 원시 부족(primal horde)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여성을 스스로 지켜내고 그들의 아들들이 자라날 때까지 뒤로 물러나 있도록 하는 폭력적이면서도 질투심 많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추방된 형제들이 다시 나타나 그들의 아버지를 죽이면서 이러한 가부장적인 부족은 그 끝을 맺게 된다. 서로 단결하여 그들은 그들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하게 될 용기를 얻게 된다(아마 어떠한 문화적 진보, 신무기의 발명이 그들에게 더 강한 힘을 주었을 것이다). 식인종은 그들이 그들의 희생자를 죽임과 동시에 잡아먹었다고 보아야만 설명될 수 있다. 폭력적인 원시적 아버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 형제들 개개인에게는 공포와 시기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 그를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성취하고, 그 각각은 아버지의 힘의 일부를 이어받게 된다. 아마 인류의 가장 최초의 축제 중 하나였을 이 '토템적 식사' 는 이 인상적이고 폭력적인, 많은 것의 시작이 되었을 행위의 반복이자 기념이었다."

Freud에게 즉, 'horde' 는 폭력과 범죄에 기반하여 형성된 집단이었던 셈이다.


Deleuze/Guattari의 "천 개의 고원" 에도 이러한 모습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토인비와 Frued의 저작에 힘입었을 이 두 철학자는 '노마드적인' 삶의 사회철학적 의미를 도시국가에서의 삶과 비교한다. 계급적이며 동질적이고, 전체주의적인("수목형의") 집단으로 도시국가가 특징지어진다면, 노마드는 더 자유로운 구성의, 이질적인("리좀적인") 집단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horde' 는 다시 서구 문화의 폐해를 치유할 수 있을 폭력적인 힘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블랙메틀은 이미 잘 알려진 요절한 이들(이를테면, Dead)에 대한 카니발리즘인가? 진위를 알 순 없지만, Dead의 뇌 조각을 Euronymous가 먹고 그 두개골 조각으로 목걸이를 만들었다는 (꽤 잘 알려진)루머는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데가 있다. 어쨌든 90년대 초창기의, 가장 '사악했고, 똘기 충만했던' 노르웨이 블랙메틀 씬의 많은 'horde' 들의 모습은 그렇다면 꽤 이해가 가는 편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단어에 스며 있는 폭력성은 (그 사용자의 태도를 떠나서)블랙메틀을 특징짓는 하나의 모습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 script :
1. 위의 책의 인용 부분들은 영역본을 나름대로 그냥 직역한 것이니 믿지 마시길(세칭 '발번역'). 저 정도 책들이면 서점에 국역본이 꽂혀 있을 것이다.
2. 책 읽으면서 듣는 음악이 나름의 '영감' 에 꽤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왜 무슨 책을 읽어도 다 블랙메틀하고 연결시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