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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Blood from the Soul - To Spite the Gland that Breeds

[Earache, 1993]

Napalm Death의 멤버들이 Napalm Death 외에 따로 굴리는 밴드가 참 많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을 텐데, 워낙에 많은 멤버들이 거쳐간 밴드이기도 하고, 굳이 계보를 따라 나가자면 Extreme Noise Terror나 Cathedral같은 거물급들까지 끼어 있는지라 그렇지 않은 밴드들은 아무래도 Earache의 발매작들을 정식으로 접하기 힘들었던 이 동방의 나라에서는 쉬이 간과되곤 했다. 특히 "Scum" 의 오리지널 라인업에 끼어 있지 않던 멤버들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더욱 그러할 것인데, 아무래도 데스메틀/그라인드코어의 원형에서는 많이 벗어난 음악을 했기에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런 류의 가장 보기 쉬운 예는 Mitch Harris가 중심이었던 Meathook Seed일 것이다. 이들의 앨범은 지금 당장 몇몇 중고음반 샵을 뒤져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Blood from the Soul 또한 그런 예이다. Shane Embury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이 밴드(정확히 말하자면 듀오)는 앨범 발매번호까지 Meathook Seed의 "Embedded" 다음 번호이다(MOSH 89). 그런데, 이 밴드의 앨범이 Napalm Death 등의 팬들에게 그리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은 Shane Embury와 함께 앨범에 참여한 보컬리스트가 Sick of It All의 Lou Koller이기 때문일 것도 있겠지만, 그 듀오가 한 음악이 하필이면 인더스트리얼이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 보면 Meathook Seed도 마찬가지로 욕을 먹었다. Mitch Harris와 Obituary의 멤버들이 했던 음악은 역시 인더스트리얼 물을 먹은 것이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게 원래의 밴드에서 할 수 없었던 음악을 하는 것이라면, 이들의 음악은 Sick of It All, Napalm Death 모두와 판이했다는 점에서 사이드 프로젝트의 취지에 매우 충실했던 셈이다.

그리고 사실 이들의 앨범이 정말 메틀 팬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인더스트리얼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드럼 프로그래밍이나 샘플링, 일렉트로닉스의 사용이 물론 나타나지만 결국 이 곡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리프의 힘이고, 흔히 인더스트리얼-메틀에 대해 하는 볼멘소리인 건조한 디스토션 등의 모습도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꽤 빈번하게 나타나는템포체인지도, 사실 Napalm Death나 Sick of It All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닌데 일렉트로닉스의 차용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헤비 리프 사이의 전개를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한 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Shane Embury의 리프들은 끊어짐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편인데,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템포체인지를 통해 계속해서 변화를 가져가고 있는 점이 많은 인더스트리얼 밴드에게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On Fear and Prayer' 같은 곡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트레몰로 리프와 전형적인 Napalm Death풍의 리프가 오버더빙되어 전개되는데, 그 위에 입혀지는 두터운 샘플링과 일렉트로닉스는 내부적으로 매우 많은 변화를 가져가지만, 역시 매끄럽게 선 두터운 사운드를 동시에 가져간다.

결국 그래도 적응되지 않는 부분은 Lou의 보컬인 셈인데, Shane Embury의 처음부터 기타 솔로 따위는 전혀 의도하지 않고 싱코페이션이 잔뜩 들어간 리듬 연주에 하드코어 보컬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거기다 Sick of It All은 "Blood, Sweat, and No Tears" 의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밴드이다. 묵직한 톤의 보컬이 아니라 좀 더 날렵한 느낌의 보컬이라는 게 이전의 Napalm Death 등의 음악에서 들을 수 없었던 모습이지만, 사실 리프의 힘이 지배하는, 거기다 일렉트로닉스 등의 존재감이 분명한 인더스트리얼 음악에서 보컬의 비중이 과연 그렇게까지 큰 것인지는(물론 이 앨범에서 Lou의 목소리의 힘 또한 분명하지만)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Lou마저 거의 Black Sabbath까지 생각나게 하는 'Natures Hole' 이나 거의 앰비언트풍의 'Blood from the Soul' 같은 곡에까지 잘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을 앨범은 분명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평보다는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post script:
Lou Koller 이후에 Sigh의 Mirai가 이 프로젝트에 새로 참여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앨범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