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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Verdunkeln – Weder Licht noch Schatten

[Ván, 2012]

Verdunkeln라는 이름이야 생소한 편이겠지만, 사실 이 밴드도 그리 짧은 역사를 가진 이들은 아니다. 밴드는 1998년에 결성했다 하니 어쨌든 거의 15년 가량을 활동해 온 베테랑들인데, 그렇다고는 하나 사실 이들이 부지런하거나, 또는 운이 좋았던 이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나마 내가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첫 정규작이었던 "Einblick in den Qualenfall" 이 아주 훌륭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Burzum 스타일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Burzum이라는 블랙메틀계에서 손꼽히는 클리셰를 써먹는 수많은 밴드들 중에 이들만큼 독자적이었던 경우도 흔치는 않다. 과장 좀 섞으면, 거의 Blut aus Nord에까지 가깝게 곡을 뒤틀어버리는 모습은 아무나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밴드가 거의 Graupel의 사이드 프로젝트 격이라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인데, 물론 Zingultus(Endstille, Nagelfar) 같은 뛰어난 친구도 있지만, 사실 내가 기억하는 Graupel의 음악은 심플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작도 매우 오랜 시간만에 나온 앨범이었지만, "Weder Licht noch Schatten" 도 5년만에 나온 앨범이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전작도 Burzum 스타일이라지만 특이한 편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정도가 좀 더 심하다. 물론 이번 앨범도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Burzum의 스타일이다. 다만 파워 코드의 이용이나 템포의 배치 등, 많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사실 이들의 음악은 영국 고쓰 록의 전통에 좀 더 다가간 것으로 보여진다. 단적인 예로는 Fields of the Nephilm같은 이들이 생각...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Gnarl의 보컬을 들으면 좀 더 분명해진다. Nagelfar의 라이브 세션을 맡기까지 했던 이 양반이 들려주는 '클린 보컬' 은, 솔직히 Joy Division이 생각난다(이건 분명 장르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전작에서도 둠적인 측면 - 그렇더라도 Katatonia같은 류보다는 Skepticism에 가까웠지만 - 이 있긴 했지만 이 앨범에서는 좀 더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나마 리프가 변주되면서 곡을 고조시키는 방식이 블랙메틀에 가깝고, 전작에 비해서는 헤비 리프가 좀 더 곡의 전면으로 등장하는 편이기도 한데, 그렇지만 헤비 리프는 계속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면서 곡이 진행되거나, 아르페지오 등과 같이 등장하면서 곡의 분위기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의외일 정도로 이 앨범에서  리프가 곡의 진행에 있어 가지는 힘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이 역시 독일 밴드인지라, 곡에 불어넣는 포크 바이브는 이들의 스타일을 좀 더 독특한 것으로 만든다. 이들은 음악만큼이나 독일어 특유의 '소리' 를 이용하는 데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은근히 거친 - 물론 이들의 음악은 클린 보컬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 - 음색에서 풍겨지는 바이브가 조금 과장을 섞으면 Rammstein같은 밴드까지 떠올리게 하는데, 이들이 그렇다고 인더스트리얼 같은 면모까지 섞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들의 이 앨범을 블랙메틀이라고 부르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Des Antlitz der Himmels' 같은 곡에서 밴드는 무려 왈츠 리듬까지 등장시킬 정도인데, 그러고 보면 밴드는 원래부터 컨벤션에 충실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군데군데 블랙메틀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점이 있는 탐미적이면서도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Burzum 스타일의' 블랙메틀치고는 이 앨범은 리프의 존재감이 강한 편은 아니다. 사실 Katatonia같은 밴드를 들을 때처럼 진한 멜로디라인이 기억에 남는 편인데, 이 앨범이 그만큼 고쓰의 영향력이 강해진 점을 생각하면 뭐, 그게 사실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Burzum 스타일이 변주되는 모습은 거의 대부분 'depressive' 블랙메틀인데, 아무래도 니힐리스틱함보다는 낭만성에 치중하고 있는('Die Leztze Legion' 같은 곡이 단적인 예이다) 이들을 그런 류로 치부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성공적인지는 모를 일이나)적어도 자신이 속한 스타일 내에서는 가장 독특한 변용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Einblick in den Qualenfall" 덕분에 듣다 보면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흥미롭다고는 생각한다. 하긴 Nagelfar와 The Ruins of Beverast의 레이블메이트이니 보통 친구들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