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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Wintersun - Time I

[Nuclear Blast, 2012]

8년만의 신작인데 앨범 제목이 "Time I" 라니 아무래도 엄청 자의식 넘치는 앨범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다 멜로딕 데스 밴드의 앨범이 5곡뿐이라니(물론 곡들이 길긴 하다만, 이 앨범이 사실상 3곡짜리 앨범임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더욱 그렇다. 음악도 그런 예상에서 과히 틀리지 않았는데, 잠깐 들어본 첫인상은 Wintersun이 Bathory가 되고 싶었나, 하는 것이었다. 곡들은 매우 길어졌고, 멜로딕 데스의 영향력은 분명히 줄어들었다. 굳이 얘기하자면, Jari Mäenpää가 참여한 모든 앨범들은 (Ensiferum이든 Wintersun이든)파워 메틀의 요소를 다들 꽤나 갖고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 드디어 그 파워 메틀의 요소가 멜로딕 데스를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매우 강조된 오케스트레이션과 클린 보컬(가끔 정말로 Quorthon처럼 들리기도 한다)은 가끔은 강조되다 못해 너무 과장되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사운드의 스케일은 엄청 커졌다. 사실 그 사운드의 두터움만 보더라도 왜 Jari가 이 앨범을 내는데 8년이나 걸렸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실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Jari가 이 앨범의 두텁다 못해 방대한 사운드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밴드는 앨범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앨범은 컨셉트 앨범이 될 것이라고 했고, 그 최종적인 기획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앨범 한 장으로 감당할 수 없었는지, 처음에 "Time" 이었던 이 앨범은 "Time I" 와 "Time II" 로 나누어져 나오게 되었다. 이 앨범은 그러니 그 서두인 셈인데, 힘있게 서사를 이끌어 나가려는 의도인지 멜로디라인 자체는 선 굵고 - 이 동네 밴드들이 다 어느 정도는 그렇듯이 - 포크적인 면모도 풍긴다. 멜로디라인 자체만 본다면 간혹 바이킹메틀의 느낌도 주는 데가 있다. 여기에 덕지덕지 붙여진 심포닉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덕분에 그 사이를 비집고 다른 파트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적어도 이 앨범에서 거의 없다. 나는 "Wintersun" 에서의 Jari의 뛰어난 스윕 피킹 연주를 기억하고 있는데, 이 앨범에서는 스윕은 커녕,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기타 리프를 집어내기도 쉽지 않다. 기타보다는 심포닉함이 곡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리듬 파트 또한 전체적인 국면의 전환에서 터뜨려 주는 역할 외에 곡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그리 하는 것이 없다. 베이스는 잘 들리지도 않는 수준이다. 그러니 전작의 'Beyond the Dark Sun' 같은 곡은 기대할 수 없다.

앨범을 구성하는 사실상 3곡 또한 거의 단일한 분위기로 일관된다. 이 앨범이 Wintersun이 만든 영화 OST 앨범이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Time' 에서 잠깐 화려한 솔로잉이 나오는 정도를 제외한다면 곡의 큰 구조 자체도 곡마다 큰 차이는 없다. 그러니까 하나의 곡을 그냥 트랙을 나누어 쪼개 두었다는 느낌이 더 강한 편인데, 일관성이라는 면에서야 나쁘지 않지만 심포닉함에 밀려나는 기타와 리듬 파트가 오히려 그 일관성을 깨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 곡은 선 굵은 멜로디를 진행해 나가는데, 거기에 쓸데없을 정도로 트리키한 기타 연주(가끔은 키보드도 그렇다)는 밴드가 지나치게 곡을 과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앨범은 매우 강한 첫인상을 갖고 있지만, 그 인상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이 앨범은 컨셉트 앨범을 표방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서사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그리고, 사실 이 앨범 자체에는 위와 같은 아쉬운 점 말고도 충분히 즐길 만한 것들이 많지만(적어도 이 앨범에서 들을 수 있는 심포닉은 근래 나온 다른 메틀 앨범보다도 압도적이다. 솔직히 Rhapsody보다도 더) 가장 완성된 핀란드 멜로딕 데스를 들려주는 팀 중 하나였던 Wintersun이 또 (근래 많이 볼 수 있는)프로그레시브한 데스/파워 메틀 팀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아쉽다. 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멜로딕 데스라는 장르의 팬은 못 되는데, 그래도 새 앨범이 기대되던 몇 안되는 팀의 하나였다는 점에서(앨범이야 두 장밖에 안 된다만) 더욱 그렇다. 이 앨범을 기대한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나쁘지야 않지만 8년은 좀 아까울 앨범이다.

post script :
보너스 트랙이 있다. 정말 '보너스' 수준에 불과한 트랙이니 기대는 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