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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Shining - Lots of Girls Gonna Get Hurt

[Spinefarm, 2012]

"Within Deep Dark Chambers" 를 처음 들었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물론 꼬장꼬장하게 계보를 따지자면야 Burzum까지 올라갈 수 있는 스타일이겠지만, depressive/suicidal 블랙메틀이라는 스타일을 정립한 것은, 그리고 바로 저런 용어를 사용하도록 만든 장본인은 아무래도 Shining일 것이다(레이블 이름부터 Selbstmord Services였음을 생각해 보자). 니힐리스틱하기 이를 데가 없었던 Niklas Kvarforth는 이제는 여기저기서 'legendary' 한 보컬리스트로 소개된다. 지극히 침잠하는 사운드였던 Shining이 이렇게 거물이 된 점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 주변에서 보통 말하는 Shining의 '리즈시절' 은 "Livets Ändhållplats" 까지고, 그 이후에는 블랙메틀인 건 분명했지만 나름의 변화를 가져가는 음악이었다고 한다면 - 아무래도 이 시기의 음악이 소위 'depressive' 블랙메틀의 전형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곡의 구조는 갈수록 다이나믹해진다 - , 아예 작년의 "VII: Född Förlorare" 부터는 노골적으로 메인스트림에 가까워진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이 자살 찬양 밴드가 이제는 싱글을 내고, 뮤직비디오까지 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긴 레이블도 이제는 Spinefarm이구나.

이 EP도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이 앨범의 수록곡을 살펴보면 그런 면모를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4곡의 커버곡으로 구성된 이 EP는(뭐 그러니까, 팬 서비스성 앨범인 셈이다.) Katatonia의 'For My Demons' 으로 시작하는데, 이 곡이 "Tonight's Decision" 의 수록곡이었음을 생각하면 '블랙메틀 밴드' Shining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곡이었던 셈이다. 뒤의 곡들은 아예 메틀도 아니다. Kent(!)의 커버곡인 'Utan Dina Andetag', Imperiet(이 이름을 Shining 때문에 다시 들어볼 줄이야)의 'Kung Av Jidder', Poets of the Fall의 'Carnival of Rust' 가 앨범의 수록곡이다. 그러니까, Kvarforth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주는 음울한 무드의 '발라드' 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건 Shining의 앨범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 앨범이 커버 앨범으로서도 그리 재미있게 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For my Demons' 야 Katatonia는 어디까지나 메틀 밴드고, 그리 밝은 밴드도 아니었던지라 이해가 가는 바가 있지만, 나머지 세 곡마저 사실, 보컬리스트가 다르다는 것과 묵직하게 편곡되었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원곡에 거의 터치를 가하지 않은 수준의 평이한 커버이다. Alice Cooper를 커버했던 'Prince of Darkness' 가 나름 욕도 먹었지만 의외의 뒤틀림이 있던 커버였음을 생각하면 이 앨범은 더욱 심심하게 느껴진다. 원곡들이 괜찮은 '팝' 이었던지라 정말 정직한 커버곡들인 이 곡들도 귀에 잘 들어오고, Kvarforth가 놀라울 정도로 '노래를' 잘 하는지라 곡 자체로서는 편하게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 평이함이 결국은 팬 서비스 수준의 EP를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하긴 나부터도 저 커버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면 구하지 않았을 테니까.

post script :
이 앨범은 Lisa Lennartsson을 추모하며 만들어졌다는데, 대체 누군지를 모르겠다. 혹시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