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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Schizoid Lloyd - Virus

[Self-financed, 2009]

이 밴드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2007년부터 활동해 온 네덜란드의 6인조 프로그레시브 밴드라는 정도. metal-archives에서는 Rob Acda Award에서 수상한 밴드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네덜란드말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대체 그게 무슨 상인지도 알기 어렵다. 다만 어쨌든 저 상을 탄 덕분에 Ayreon 등의 프로듀스를 맡았던 Oscar Hollemann(문득 Ayreon의 앨범을 Arjen Lucassen이 프로듀스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워진다)의 도움을 받아 이 데뷔 EP를 낼 수 있었다고 하니, 어쨌든 충분히 가치 있는 상이었던 셈이다. 그렇더라도 이 밴드가 잘 알려지지 않다는 데는 이견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의 4곡뿐인 데뷔 EP(4곡이지만 러닝타임은 25분 정도 되니 짧은 앨범은 아니다)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음악을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던 프로그레시브'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밴드의 음악적 진폭은 꽤나 넓은 편이다. Kingstone Wall 같은 밴드를 연상할 수 있는 중동풍의 연주를 들을 수 있고, 두터운 코러스와 키보드가 이끌어내는 상당한 공간감이 등장하면서, Wolverine(물론 음악이 음악인지라 사운드의 질감은 그네들보다는 따뜻한 편이다) 같은 부류를 연상할 수 있는 헤비 리프도 등장한다(A Perfect Circle 같은 밴드를 언급하는 이들도 있던데, 그들보다는 더 테크니컬한 스타일이다). 근래의 프로그레시브 밴드들 중에서 이런 폭넓은 사운드를 들려줬던 예를 많이 찾기는 어렵다. 아마 가장 유사한 정도의 앨범이었다면 Pain of Salvation의 "Entropia" 였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에 기반하여 밴드는 통상적인 '모던 프로그' 밴드가 그간 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준다. 밴드가 만들어내는 코러스나 공간감은 사실 일반적인 프로그레시브 밴드보다는 Dead Can Dance 류의 분위기에 더 가깝다. 'Quarantine' 에서 A Perfect Circle을 연상할 수 있을 절도있는 리프를 들려주다가 'The Fall' 을 플라멩고 기타로 시작하는 모습도 장르의 컨벤션에서는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밴드가 어쨌든 자신들은 확실히 '프로그레시브' 밴드라고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앨범의 여기저기에서 등장하는 노골적으로 Pink Floyd풍의 기타 솔로잉이나 'Nothing Left' 의 사이키델릭함을 떠받치는 해먼드 오르간 연주 등은 이 밴드가 앞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떠나서 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작법을 알고 있음을 엿보게 해 준다. 물론 해먼드가 나오다가도 헤비 리프에 그로울링, 심지어는 그런지 리프까지 등장하는 게 이들의 스타일인지라 명확한 '작법' 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이들이 이 여러 가지 요소들을 매끄럽게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 나갈 수 있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정도로 표현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 'Nothing Left' 같은 곡의 굴곡 있는 서사를 한번도 숨이 흐트러지지 않고 명징한 멜로디로 풀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들으면서 놀라웠던 앨범이었다. 보컬이 좀 두꺼운 톤이었으면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어쨌든 본격 메틀 밴드는 아니니까.

post script :
metal-archives에는 앨범의 포맷을 'digital download' 라고 해서 mp3로만 돌아다니는 것처럼 해 놨는데... CD도 있다. 물론 밴드의 bandcamp 사이트에 가면 이 앨범의 전곡을 무료로 들어볼 수 있으니 꼭 살 필요는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