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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Kenji Siratori - Exterminator Inc.

[Roli Noise, 2006]

Kenji Siratori는 일본의 사이버펑크 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내가 보기엔 약간 William Burroughs 생각이 난다/물론, 훨씬 거친 편이다), 그가 음악을 하기도 한다는 건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를 아연실색시킨 것은, 그가 음악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무시할 정도의 다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현대 전자음악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는 한데, 그래도 대충 족적을 보건대 이건 그냥 찍어내는 음악이 아니라는 정도는 쉬이 보이기에 눈여겨 보아야 한다. Ant-Zen에서 나왔던 "Panik Mekanik" 앨범에 Kenji가 참여한 것을 발견한 것, Kenji가 Old Europa Cafe에서도 앨범을 낸 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이 앨범은 그의 2006년의 가장 초기작들 중 하나이다(1년에 한 두장 내는 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두 장의 cd에 9개 트랙이지만, 곡명은 'Mantra 1' 에서 'Mantra 9' 까지의 배열이기 때문에, 굳이 트랙의 구분의 필요성은 없고, 다만 트랙에 따라서 Kenji가 배열하는 노이즈의 패턴의 변화 정도는 느껴진다. 하지만 개별 트랙은 이전 트랙의 패턴에서 나아가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의 총체적인 곡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사실 이런 모습은 어느 정도는 의외인데, Kenji는 근래 가장 거칠고 형식 파괴적인 음악을 하고 있는 뮤지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물론, Merzbow의 최고의 시절과는 아직은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좋게 생각하도록 하자.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계를 아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니. 그리고 어쨌든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노이즈는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훨씬 변화가 심한 편이다.

곡명이 왜 'Mantra' 인지는 적당히 변조되어 노이즈에 올려지는 보컬을 보면 알 수 있을진대, 이 만트라가 노이즈의 패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이즈의 콘트라스트에 따라서 만트라가 사운드의 빈 자리를 메꾸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전형적인 'spoken word' 스타일이기도 하나, 이 앨범의 경우 배경 사운드와 목소리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된다. 목소리는 다른 노이즈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노이즈의 요소로 여겨진다. 다만 우리가 그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물론, 나는 일본어를 하지 못하니 이에 해당되진 않겠지만) 노이즈일 뿐이다. 이건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부분인데, 우리가 보통 의미를 알 수 있을 만한 소리를 노이즈라 하진 않기 때문이다. 뭐,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분명히 일본어 만트라를 구사하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이 사운드는 그 의미를 음미하라고 넣어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앨범을 통틀어 디스크를 갈아 끼우는 시간 외에는 어떠한 브레이크도 없는데, 유사하면서도 그 패턴을 달리하는 노이즈는 분명 꽤나 피곤한 경험이다. 기본적인 톤은 어둡지만 그에 귀를 찌르는 사운드 샘플이 끼어 들어가기도 하는데, 시종일관한 분위기를 가져간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인 편이고, 그러면서도 변덕스러운 부분이 있는지라,(상술했듯이, 변화가 심한 편이다) 40분이 조금 되지 않는 러닝타임 동안 'sick' 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누가 이런 노이즈 음악을 듣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보통(물론, 나도 많이 듣지 않는다) '신경증의 대리체험' 정도로 얘기하는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앨범은 성공적이다. 부차적인 부분이지만, 플라스틱 백에 디스크를 담아 주는 디자인도 (꽂아 놓기가 어렵다는 점을 제외한다면)나름 마음에 든다. 최근작을 들어보진 못했지만, Merzbow에 이은 '차세대 변태 뮤지션' 이 되어 있을 것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가격이 5달러라는 건 대단한 미덕이다. 만수 이펙트(!)만 아니라면 확실히 저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