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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장기하와 얼굴들 - 별일 없이 산다

[붕가붕가레코드, 2009]

지인에게 이 앨범을 선물받은 뒤(물론, 그 친구는 나와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에 돌려본 것은 이들이 이미 충분히 이슈메이커로 된 이후였다(물론 이들은 그 이전에도 충분히 주목받긴 했다). 그 전까지 이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지 않던 나로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에 대한 담론의 형성은 물론, 넷상에서 생각 이상으로 재생산되고 있던 컨텐츠에 사실 적잖이 놀랐다. 물론 재생산되는 부분은 사실 음악보다는 미미시스터즈의 '달찬춤' 으로 상징되는 그들의 이미지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겠다만. 거기다 장기하는 '음악을 하는 것과 나의 학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울대 출신이니, 미디어의 관심을 받기는 좀 더 용이할 것이다. 지인은 이것이야말로 후기자본주의적 감성을 쿡쿡 건드리는 음악이라고는 하나, 그건 생각해 볼 일.

이들의 음악은 노골적으로 올드하다. 원래의 싱글에 있었던 곡들은 다시 레코딩되어 수록된 정도이니(공간감이 강해진 정도) 놀라울 것이 없을 것이고, 싱글에 없던 곡들은 노골적일 정도로 산울림과 송골매의 느낌을 보인다. 오히려, 아마도 싱글의 인기에 가장 큰 레테르들로 작용했을 '위트' 는 더 약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밴드는 근래 국내 음악에서 접해본 지 오래 됐던(물론, 내가 접해 본 협소한 범위에 한정해서) 서사에 치중한다는 느낌을 분명히 준다. 나는 이들의 가사가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거나, 있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들은 분명한 '이야기' 를 하고 있다. 방바닥에 발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는 등의 이야기들. 다시금 생각해 보매, 재생산되던 컨텐츠들과 담론들에서 밴드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건 적어도 이슈메이커화된 이들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나는 '올드하다' 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80년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최소한 이들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 밴드로서 자칫하면 단편적일 수 있을 서사와 멜로디를 나름 풍부하게 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네 7~80년대의 모습을 다시 마주한다는 정도의 기시감이 사람을 착각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은 사이키델리아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가지고 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직은 습작의 수준인 듯하다.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 가 특히나 그렇게 들렸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 의 녹음은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게 아닌가 싶다. '나와' 는 나름 '장교주' 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 장기하 나름의 독특한 어법을 구사하지만, 장기하가 아닌 '얼굴들' 은 겉돈다.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아마도 눈뜨고코베인에서부터 이어졌다 싶을)나는 소위 '쌈마이 키치(나쁜 뜻이 아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에 '우리는 이미지로 먹고 살지 않음' 정도의 정체성은 확실히 했다는 정도 외의 의미는 유보한다. 일단 앨범 중반부에 피곤할 정도로 이어지던 복제의 모습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들을, 그들이 경애하는 선배들만큼 오래 지켜보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기하를 소비하는 대중들은 (부르디외를 조금 빌어온다면)대중 문화의 장을 '어느 정도' 전복하는 의미에서 받아들이고도 있다고 한다면, 이들의 앞으로의 행보는 아마도 스스로 그 재생산을 계속해서 불러올 수 있는 모습을 갖추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다. 나는 명확한 서사에 우호적인(아니면 우호적이라 여기는) 편이지만, 그 서사가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post script :
1. 이 글에는 의도적인 '먹물 냄새' 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 있다. 코를 막고 보셔야 할지도.
2. 내 블로그에 얘네도 올라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