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Pollution/Metal

Slayer - World Painted Blood

[American Recordings, 2009]

Slayer는 사실 무조건의 리스펙트를 보내는 밴드이기는 하지만, 밴드의 신작이 들을 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사람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이지만 멤버들의 근황은 그리 바람직했던 것은 아니다. Tom Araya가 아마도 세월의 탓일지 성대이상을 호소한다든가 등의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나는 최소한 "God Hates Us All" 부터는 Slayer 앨범의 녹음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적당히 거친 질감을 살리려는 의도는 있지만, 이건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밴드의 빈틈없는 사운드에 쓸데없는 공간감을 남긴다. Slayer가 언제 그루브함이라던가, 아니면 사운드스케이프 같은 걸로 승부했던 밴드였던가. 다행스러운 건 (그 자주도 나가시던)Dave Lombardo가 탈퇴하지 않았다는 정도. 그럼에도 Slayer의 앨범을 구하도록 하는 건 밴드에 대한 리스펙트와, 그 나머지는 Megadeth의 근작이 정말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도 전작보다는 성공적일 것이다. 적어도, 'Unit 731' 부터 'Hate Worldwide' 까지는 Slayer의 예전 모습이 확실히 느껴지는 편이다. 물론 이는 예전의 클래식만큼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님은 당연하다. 밴드는 적당히 밴드에게 보통 '생각되는' 모습과는 구별되는(이를테면, 'Public Display of Dismemberment' 같은. 물론 'Necrophobic'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그보다는 좀 더 심플하다) 곡 사이사이에 익숙한 모습을 적당히 심어 놓는다. 물론 'Playing with Dolls' 같은 곡은, 좀 과장해서, 내가 들은 Slayer의 곡들 중에서 가장 '이상하다'. 어느 정도는 "Christ Illusion" 앨범의 'Jihad' 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흥미롭다는 게 중론인 듯하나, 난 저 곡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역시 나만 그런 것도 같지만, 나는 'Americon' 을 대체 앨범에 왜 넣었는지를 잘 모르겠다. 앨범 해설지의 말대로 "Undisputed Attitude" 를 생각나게 하지만, 단순하다는 외에 강렬한 인상을 전혀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즉, 앨범의 광고 문구와는 달리(물론 누구도 기대치 않았을 것이다) 이 앨범을 80년대 사운드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Seasons in the Abyss" 이후에 나온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80년대에 가깝기는 할 것이다. 재미있게도 "Seasons..." 를 제외하면 90년대 이후에 나온 앨범들 중 가장 80년대풍이라는 것인데, "Seasons..." 도 완성도는 별론으로 하고, "Reign in Blood" 와는 구별되는 스타일이었다는 점에서는 이 앨범이 더 80년대풍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80년대의 스타일을 이들이, 물론 '체득' 하고 있겠지만, "Reign in Blood" 와는 확연히 느낌이 틀리다. 확실히 그 앨범은 이미 오래 전에 마일스톤이 되었고, 문제는 그것이 Slayer에게 있어서도 커다란 마일스톤이 되었다는 느낌이 이젠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밴드는 80년대 스타일을 정립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정립한 스타일을 '따라해야' 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는 느낌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전의 강렬했던 아우라를 잃어버린 공룡 밴드. 그것이 내가 이번 앨범을 듣고 Slayer에 대해 든 생각일 것이다. Tom Araya의 확실히 '예전같지 않은' 보컬은 아무래도 그 한 증거일 것이다. 내가 Rick Rubin의 프로듀싱 스타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한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양반이 참여한 게 뭐 어제 오늘 일이냐마는)

물론, 그럼에도 Slayer는 이전의 자신들의 스타일에서 무엇이 중요한 부분이었는지를 물론 '체득' 하고 있다. Hanneman과 King의 리프는 어느 순간 청자의 기시감을 바로 '현실' 의 것으로 착각(또는 동일시)하도록 하는 강한 힘을 보여준다. 아마도 'World Painted Blood' 의 후반부와, 'Psychopathy Red'(사실, 이 곡도 나로서는 "Reign in Blood" 에 비교한다면 리프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물론, 나의 favorite Slayer album은 "Show No Mercy" 이지만, 그런 걸 기대할 수야) 같은 곡이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밴드는 "Reign in Blood" 만이 아닌, "South of Heaven" 이나 "Season in the Abyss" 등도 또한 기억하고 있기에, 자신들의 마일스톤을 따라가는 모습은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이전을 회고하는 듯한 모양새도 보인다. "Reign in Blood" 에 비해서 확실히 멜로딕하고, 'epic' 한 면모(이렇지 않고서야 'Playing with Dolls' 같은 걸 만들 수가)는 그에서 기인한 것일 것이다. 솔직히 이 앨범을 즐겨 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그렇지만 역시, 이 앨범이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Slayer가 속된 말로 '맛이 가지는 않았다' 는 정도만은 확실히 보여 주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밴드의 말대로 앞으로 세 장의 앨범만을 내고 해체할 것이라고 한다면, 밴드의 음악적 회고록의 첫 편 정도로 생각해 준다면 괜찮을 것이다. 발단에서 결말까지 이른다고 한다면, 이 정도의 시작은 그래도, 좋게 봐 줄 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