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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Writings

어느 정도의 음악성, 그리고 대중성

월요일마다 나오는 'ㅇㅇㅇㅇ신문' 이라는 무가지가 있다. 물론 대학 내에만 풀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볼 만한 내용은(내 시각에서는) 참 보기 드문 편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펜글씨를 많이 쓰는 나로서는 매주 집어들게 되긴 하는데(넓이나, 두께나, 이만한 공짜 책받침이 없다) 문득 표지모델이 눈에 들어왔다. 무가지라도 'sex sells' 라는 이 시대의 '격언' 이 적용되는 것인지, 보통 표지모델은 예쁘장한 여대생이 된다. 또 눈에 들어 왔던 것은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은 색 기타였다. 요새는 기타도 악세사리로 쓰는구나, 하면서 잠깐 표지모델의 인터뷰를 읽었다. 나도 어쩌다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밴드 T의 여성 보컬리스트 J였다. 전문 음악지도 아니고 별 읽을 거 없는(자꾸 이렇게 말하니 여기 참여해 열심히 글 쓸 학생 기자들에게 좀 미안해지기는 하는데) 무가지의 표지모델 인터뷰에서 깊은 음악관에 대한 얘기가 나올 리는 없겠지만,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음악성이 좋으면 대중성이 떨어져도 용서된다는 말은 이제 다 옛말이고 핑계라고 생각해요...음악이라는 게 사람과 소통하는 거라면 진정한 음악은 어느 정도의 대중성은 갖춰야 한다고 봐요."

뭐, 그렇지. 듣기 좋은 음악은 좋은 것이지... 라고 생각하면 문제 없겠으나, (여기 오는 사람은 다들 알다시피)보통 '대중성 없다고 여겨지는' 음악을 듣는 나로서는,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갖춘 진정한 음악은 대체 뭐냐? 싶어서 약간 부아가 난다. 아니, 음악성이 좋지만 대중성이 떨어져서 이제는 용서될 수 없는 음악은 무엇인가? 그녀가 이 대목에서 소위 아방가르드를 의도한 것 같지는 않다(선입견이지만, 이 인터뷰에서 깊은 음악관을 토로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에 세칭 인디 중에서도 서브컬쳐에 속하는 음악들을 말한 것이라면, 그건 그녀가 서브컬쳐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탓이라고 넘겨버릴 일이다. 혹자는 신나다 못해 너무도 경박해서 듣지 않는 Finntroll 같은 밴드를 대중성이 없다고 말할 것은 무엇인가?

나한테는 우리 복길이 형님들, 대중성이 철철 넘쳐 흘러 보이는데(너무 넘쳐서 문제일 장도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그럼 대중성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대중성' 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게 계량화하기도 어렵겠지만, 대중성의 척도가 그 음악의 판매고라면 그건 아마도 장르의 특성, 내지는 당대의 트렌드의 문제에 더 가까울 것이지, 음악을 문제삼을 것도 아닐 것 같다. 80년대에 Def Leppard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지만, "Hysteria" 가 2010년에 나왔다면 그렇게 팔리게 될까. 대중 음악은 통상 영어로 popular music으로 표현된다. 아마도 후자의 영단어가 먼저 존재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겠지만, 저게 왜 '대중 음악' 으로 번역되는가? 역자는 음악의 인기를 대중성과 동일시해서 그런 것일까? 판매고가 대중성과 같다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인기와 판매고의 관련성을 인정하게 된다면, 대중성과의 관련성도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성은 당대의 수용자층이 얼마나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구입했는지의 문제이지 음악 자체의 속성으로 볼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결론은 받아들이기 조금 어렵다. 뮤지션은 음악을 만드는 데 대중성의 측면에 있어서는 전혀 영향력 없다는 건, 아무래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앞의 질문을 조금 바꿔서 반복해서,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가진 진정한 음악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음악성이 좋아도 대중성이 떨어지면 안 된다면, 음악성은 '어느 정도' 로 갖춰야 하는 것인가? '진정한 음악이 무엇이냐' 와 연관될 문제이니 이에 정확한 답을 내는 것은 기대하기도 어렵겠지만, (물론 나도 모른다)아무래도 음악성과 대중성을 마치 상반되는 두 가지 요소인 양 생각하는 것은 꽤 많이 곤란할 법하다. 음악성만을 가진, 또는 대중성만을 가진 음악은 존재하는가.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이라는 두 가지의 분류가 합당한 것인가. 그냥 음악도 아니고 진정한 음악은 대체 무엇인가. 진정하지 못한 음악과 진정한 음악이 구별될 수 있는 것인가. 취향의 사회학의 존재를 부정할 생각은 없는데, '진정한 음악' 을 '진정하지 못한 음악' 에 우위인 것으로 둘 수 있겠는가.('진정하지 못한 음악' 이라 생각하면서 이를 우위에 두는 경우는, 나로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J가(물론 대부분의 이들이 그럴 것이다) 이런 질문에 'yes' 라고 대답할 것 같지 않다는 게 꽤나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이런 구별 자체가 사실은 별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J는 음악이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했는데(물론, 이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아마도 그것은 작자의 '의도' 를 대중이 '즐거워하면서'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의 '소통' 과 유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성은 음악성 내지는 예술성, 과는 완전히 별개일 것이다. 현실적인 충돌의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자본주의 음악 산업의 특성, 내지는 당대의 트렌드의 결과일 것이다. 블랙메틀을 한다면야 충돌하다 못해 음악을 계속할 지 여부가 의문시될 수도 있겠지만, 음악성 있는 댄스 뮤직을 한다면 어떨까. 그 댄스 뮤직이 우연히 트렌드에도 맞는다면? 그렇다면 대중 음악과 예술 음악의 구별이야말로 참 의미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중 음악은 'popular music' 이 아니라, 'mass music' 이라고 수정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기획사에서 아이돌 댄스 그룹을 권하는 것이 싫어서 인디에서 밴드를 시작했다는 J의 말은, (항상 어느 정도는 삐딱한)나로서는 그래서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