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Pollution/Non-Metal

Trey Gunn(with Marco Minnemann) - Modulator

[7d Media, 2010]

Trey Gunn은 사실 그리 설명이 필요 없을 인물이다. 이런 저런 활동들도 그렇다 치고, 아무래도 King Crimson의 멤버인 만큼 더욱 그렇다. 당연히 앨범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Trey Gunn이겠지만, 실은 이 Marco Minnemann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Modern Drummer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드러머로 뽑히기도 했다는 이 뮤지션은(물론 나도 잘 모르는 이지만) 이 앨범이 Trey Gunn의 앨범이 아닌, 두 뮤지션의 콜라보라고 하는 게 합당하다는 존재감을 준다. 사실 앨범은 내 생각에는 Marco의 드러밍이 메인이고, Trey의 프레이즈는 이를 바탕으로 한 변주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Marco가 앨범 전면으로 나오려고 하는 모습은 그리 보여 주지 않는 만큼, 이 정도는 유보해 둔다(라고 말은 하지만, 일단 51분짜리 끊임 없는 - 정말로 쉬지 않는다 - 무지막지한 드러밍은 암만 뒤에 물러서 있어도, 의식되지 않을 수가 없다). 앨범은 2006년에 녹음된, 51분간의 Marco의 라이브 드럼 솔로를 기반으로 해서 Trey Gunn이 살을 입힌 결과물인 것이다.

물론 Marco가 드러밍만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하기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기부터는 이제 Trey Gunn의 손이 닿기 시작한다. Trey는 Marco의 드러밍을 22개 파트로 나누어서 - 내가 세어 봤다는 게 아니고, 앨범은 22곡이 수록되어 있다 - 프레이즈를 입혀 나가는데, Marco의 솔로잉은 즉흥이었다면 Trey의 연주는 계산된 즉흥의 형태가 된다. 아무래도 본인 자체가 여러 밴드들을 거쳐 온 사람이다 보니 그 변화의 양상도 꽤 다채로운 편이다. 이를테면, Brian Eno 풍의 앰비언트를 의도하는 듯 하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근래의 King Crimson의 헤비 사운드, 내지는 Tool을 의도하는 듯한 부분도 나타난다. 'Slingcharm' 같은 곡에서는 스트레이트한 하드 록 사운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물론 Gunn의 무지막지한 Warr guitar - 뭔지 모른다면, 그냥 채프먼 스틱을 생각하면 된다 - 덕분에, Gunn의 연주는 매우 넓은 음역대를 오간다.

이 괴이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앨범은 덕분에 연주와 작곡의 경계를 매우 모호하게 만든다. Gunn이 Marco의 드러밍과 조금씩 계속 '엇나가면서' 텐션을 유지하도록 매우 신경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밴드의 음악과 같이 결합되고, 다시 분리되는 모습은 아주 흥미롭다. 앨범이 두 명의 멤버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 Michael Connolly가 Uilleann pipe를 연주하긴 했다지만, 비중은 별로 없다 - , Gunn이 고생한 덕에 이런 저런 사운드 이펙트들이 더해져 앨범의 사운드는 매우 두터운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거 맞춰 보다가 머리 꽤나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Twisted Pair' 같은 곡이 흡사 RIO 물을 먹은 King Crimson 생각까지 나게 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앨범은 이제 '기록된 임프로바이징' 정도를 실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결과는 내 생각에는 이 앨범에서는 성공적이다. Marco의 드러밍 자체가 즉흥이면서도 그 자체로서 많은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지라, 처으부터 즉흥으로서 기록되더라도 계산된 부분과 엇나가지 않는 모습(물론 이는 Trey Gunn의 공이 더 크겠지만)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걸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건 워낙에 자의적이게도, 폭넓게도 사용되는 용어이다. 내 생각에는 후자의 폐해가 전자보다 훨씬 심각하다) 적어도 이 두 뮤지션이 꽤 흥미로운 실험을 해 보려 했다는 점은 사실인 듯 싶다. 그리고 그 실험이, 아주 듣기가 좋다. 그게 관록인지도 모르지만,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라인을 박아 넣는 모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신기한 모양새의 앨범에서 무슨 서사를 찾을 수 있을 지는 나로서는 아직 모를 일이나, 이 앨범은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롭다. 그런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