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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Samael - Above

[Nuclear Blast, 2009]

Samael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밴드가 가장 빛나던 시절은(물론, "Passage" 가 최고라고 하는 사람도 보기는 했다만) 아무래도 "Ceremony of Opposites" 와 "Blood Ritual" 시절일 텐데, 스래쉬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면서도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블랙메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Passage" 는 편성 자체는 동일했으나 상당한 공간감을 가진, 그러면서도 꽤나 선 굵은 리프를 가진 음악이었다. "Eternal" 이나 "Reign of Light" "Solar Soul" 같은 앨범들은 블랙메틀이라 말하기 어려운 앨범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틀리다. 밴드의 변신은 사실 초기의 스타일을 원하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그래도 꽤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블랙메틀 밴드와는 달랐던 것 같다. "Reign of Light" 나 "Solar Soul" 에 무게감 있는 찬사를 늘어놓던 프로그레시브 록/메틀 웹진들을 보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Samael에 대해 말할 수 있던 것은 블랙메틀로 시작해서, 일정한 방향성과 수준을 가지고 그 음악을 변화시켜 왔다는 점 외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꽤나 당혹스럽다. 밴드가 새 앨범에서 선택하는 음악은, 물론, 초기작에서의 밴드가 연주한 블랙메틀과는 차이가 있다. 근래의 밴드의 음악이 일렉트로닉스를 이용한 인더스트리얼 메틀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밴드는 다시 트레몰로를 긁어댄다. 프로듀스도 Waldemar Sorychta가 아닌 Xy가 직접 하고 있고, 잠깐 주목할 부분은 믹싱을 Fredrik Nordstrom이 맡고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새 앨범은 분명히 블랙메틀이라고 생각하지만, 초창기의 거친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흔히들 얘기하는 '밴드가 자신의 뿌리로 돌아갔다' 식의 말은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닌데, Vorph의 디스토션 걸린 목소리나 Xy의 키보드와 트레몰로가 구축하는 (비중이 크진 않지만)블랙메틀 식의 사이키델리아는 Samael의 블랙메틀 사운드를 특징짓던 가장 큰 부분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Fredrik의 손이 닿아서 그런지, 앨범은 밴드가 내놓은 어떤 앨범보다도 헤비한 기타 사운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은 Samael이 자신들의 블랙메틀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밴드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Vorph의 디스토션 걸린 보컬이나 Xy의 키보드가 그 중심에 있다. 물론 심포닉하다는 평까지 들었던 전작인 "Solar Soul" 이나 그 이전의 앨범과 비교할 때 훨씬 직선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탓에, Xy는 이번 앨범에서 키보드보다는 드럼 프로그래밍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느껴진다. 두터운 드럼 사운드가 거의 '스펙터' 식으로 메틀 드럼 사운드를 재구성한다는 느낌이랄까. Samael 식의 사이키델리아를 커다란 볼륨 사이에서 구현하는 게 쉬운 건 아닐 것이니까 이러한 시도는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메틀 사운드는 유감스럽게도, 무겁고 빠르지만 나로서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Vorph라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의 목소리에 굳이 이펙터를 사용하는 것도 불만이고, 약화된 키보드는 헤비함을 살려 주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터운 사운드 사이에서 역동성을 상실한다. 앨범은 그래서 "Ceremony of Opposites" 의 분위기를 재현하려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 주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또한 명확하다. Xy가 만들어낸 드럼 사운드가 매우 공격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것임에도, 앨범의 곡들이 의외로 다 비슷하게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앨범의 빛나는 부분은 꽤나 많다. 사실 그 시종일관한 답답함을 빼고 생각한다면, 이 앨범에서 '메틀' 로서 빈틈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인상적인 오프닝인 'Under One Flag' 도 그렇고, Xy의 키보드의 힘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Black Hole' 이 내 생각에는 앨범의 백미이지만, 공격성을 보이다 못해 거의 Impaled Nazarene을 생각나게 할 정도의 'Polygames' 도 있다. 그리고 시종일관한 공격성 덕에, 밴드의 올드 팬(이 한국에 얼마냐 되겠냐마는)들은 대부분 이 앨범에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다. 어쨌거나 노련한 밴드인지라 공격적인 사운드를 유연하게 풀어 나가는 솜씨는 확실히 놀랍다. 블랙메틀 씬의 다른 '천재들' 덕에 Xy의 다재다능함이 그리 돋보이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이 양반도 사실 보통 양반이 아니지 않은가.


 
Samael - Black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