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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Sieben - Star Wood Brick Firmament

[Redroom, 2010]

물론 네오포크에서 가장 거물급의 뮤지션은 역시 Douglas P. 나 Albin Julius, Michael Moynihan 등이 있겠지만, Matt Howden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Matt 본인이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인지라, 이런저런 밴드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 Matt만큼이나 폭 넓게 활동하고 있는 네오포크 뮤지션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Sol Invictus와의 협연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그가 그 외 L'ame Immortelle나 Walkabouts같은 밴드들과도 함께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뮤지션들과는 꽤 구별되는 모습일 것이다. 물론 그런 일련의 활동들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 그의 솔로 작품들보다도 - Sieben이다. Redroom 자체가 Matt Howden의 개인 레이블임을 참고로 알아 두자.

그렇지만 Sieben은 Matt의 그런 활동을 반영한 탓인지 스타일을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가는 프로젝트였고, 전작인 "As They Should Sound" 에서는 거의 10년의 활동을 회고하는 듯, 그간의 스타일들을 집대성해 모아 두고 있었다. Matt은 그 앨범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 앨범은 Matt의 Sol Invistus 시절의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 아무래도 "Desire Rites" 앨범의 연장선일 것이다. 물론 예의 멜로딕하고 Matt 특유의 경쾌한 바이올린도 여전하다. 클래식을 제외하고, 대중 음악에서 바이올린이 사용된 예 중, 바이올린이 멜로디와 동시에 강한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는 꽤나 드물다. 그리고 아마 앨범의 가장 빛나는 부분도 그 부분일 것이다. 'Minack Theatre' 나 'Build You a Song' 이 가장 전형적인 증거이다. 앨범에서 전작보다 스트링의 비중이 줄어든 것이 Matt의 연주를 더 인상적으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말할 것은 이 앨범의 가사이다. Matt Howden은 개별 곡마다 뚜렷한 이미지를 제시하는 편이지만, 그 이미지는 사실 불명확한 편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Matt이 계속해서 스타일을 변화시켜 나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형식상의 일탈에서 나타나는 결과일 것이라 생각한다. Matt이 보통 네오포크 밴드보다도 더욱 팝적인 접근을 취하는 이유도 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Sieben의 곡은 아주 복잡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네오포크보다는 더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는 편이다. 비구상적이라는 것, 말하자면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앵포르멜 회화와 같은 모양새이다. 첫 곡인 'Minack Theatre' 부터가 그렇다. Cornwall의 해안가에 세워진 야외 극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 곡부터가 텍스트의 많은 부분을 열어 둔 채 남겨 둔다. Matt은 'real act of love' 라고 설명하지만, 극장에서 벌어지는 연극의 내용은 사실 청자가 구성할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Build You a Song' 은 좀 더 나아간다. Matt은 이 곡을 'DIY for lovers' 라고 설명하는데, 메타텍스트이기도 하면서, 청자에게 멋대로 생각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의 서술은 움베르토 에코, 열린 예술 작품: 카오스모스의 시학, 새물결, 1995를 참고함이 좋을 것이다)

다행히도 Matt은 청자에게 이런 피곤함을 요구하면서도(물론, 재미있기도 하겠지만) 청자가 바랬던 점들을 잘 짚고 넘어간다. 곡명부터가 그 스타일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Long Live the Post Romantic Empire' 는 네오포크다운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Donald & Crowhurst' 는 Sieben이 드라마틱함을 어떻게 재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좀 더 경쾌한 전반부(Donald)와, 멜랑콜리하면서도 의외로 괴팍한 맛이 있는 후반부(Crowhurst)가 결합되어 있다. 분위기라는 점에서도, 꽤나 풍요로운 사운드를 보여주는 'Build You a Song' 에서, 매우 'ritual' 한 느낌을 주는 퍼커션이 돋보이는 'Floating' 에서까지. 말하자면 Matt은 중요한 요점을 잘 짚고 있으나, 세세한 부분은 모두 빈 채로 남겨 둔 캔버스를 던져 준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Matt의 친절한 제시 덕분에, 빈 채로 남겨놓아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별 얘기 아니라, 그 만큼 곡들의 팝 센스도 있다는 의미이다. 네오포크 앨범이자, 훌륭한 팝 앨범(뭐, 네오포크를 팝스의 범주에 넣는 데 거리감이 없다면 말이다)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을 열어 둔 탓에 청자는 사실 꽤나 집중하며 들을 수 있을 앨범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앨범을 열린 예술 작품의 한 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밝고, 음악이기는 하지만, 말라르메의 텍스트처럼 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 만큼 난 이 앨범을 좋아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