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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ic Scope

[DVD] Black Metal Satanica

[MVD, 2008]

제목만 보아도 분명하지만, 이런 식의 DVD가 다들 그렇듯이, 블랙메틀의 역사와 이런저런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DVD의 하나이다. 하지만 Lord of Chaos 이후 블랙메틀의 역사는 꽤 많이 알려진 편이니 이런 건 사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스칸디나비아 지방에 강요되었던 기독교 문화가 블랙메틀이라는 반문화의 폭발에 기폭제가 되었고, 페이거니즘이나 바이킹의 이미지 등이 결합되면서 나타난 등등의 이야기들. 사실 하자면 꽤 할 얘기는 많을 것이다. 그리고 Count의 사건 이후에 이 이야기는 블랙메틀의 마이너함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는 꽤 잘 먹히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Count의 살인 사건이 헐리우드 영화 소재로도 쓰이는 자본주의의 세상이다.

이 8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장르의 탄생과 이런 저런 사건들에 대한 설명과, 장르를 특징짓는 라이프스타일이나 테마 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감독인 Mats Lundberg가 블랙메틀의 주요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블랙메틀의 인물들은 여기에서 두 부류로 구별되는데, 굳이 얘기하다면 'Satanist' 와 'Paganist' 일 것이다. 후자의 경우야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스칸디나비아에 강요되었던 기독교가 심어 둔 예수의 자리를 이들의 경우 오딘 등이 대체하게 되지만,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나 다신론적 에토스가 아니라, 운명이나 존엄성에 대한 그들 나름의 좀 더 '인간적인' 시각이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사타니스트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폄하되는 편이다. 블랙메틀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신성모독적/악마주의적 행위는 립 서비스 정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저런 상징물들은 그냥 충격 요법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야 많이 들어 온 Crowley나 Lavey에 대한 비난과도 연결되는 부분일 것이다.

문제는 이 DVD가 겨우 80분이라는 것이다. 많이 부족한 시간이다. 물론 처음에 장르의 탄생에 있어 Venom과 Bathory가 어떤 역할을 하였고, Count가 Euronymous를 어떻게 살해하였고 등의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는 하겠지만, 이젠 너무 뻔해져 버린 이야기이다. 사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블랙메틀 뮤지션들과의 인터뷰이다. 길지는 않지만 꽤 많은 밴드들이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Shining의 Kvarforth와 Watain의 Eric Danielsson일 것이다. 많이들 흥미로워하는 부분이지만, 그렇게 목소리를 갈아대던 이들이 조곤조곤하고, 생각보다 '말쑥한' - 물론 그래 봤자 바이킹 코스프레이긴 한데 - 모습으로 나타나서 생각을 조리 있게 풀어 나가는 모습(물론 내용을 잘 뜯어 보면 싸이코도 이런 싸이코가 없다만)은 블랙메틀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놀라울 모습일 것이다. (Eric은 심지어 와인까지 마시면서 얘기한다)주제와는 무관하지만, 남자끼리의 인터뷰여서 그런지 여자 얘기도 나온다. 밴드 활동 하면서 얘기해 볼 만한 여자는 서너 명 정도였다 등등. 그 외에 Dark Funeral, Vreid, Mordichrist 등의 밴드들이 등장하는데, 흘러간 밴드들과 근래의 밴드들이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정도를 보여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DVD가 흥미롭다고는 못 하겠다. 인터뷰는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3~40분 정도의 시간에서 의미 있는 결론을 끌어내기는 부족하다. DVD에서 등장하는 모습들은 좋게 얘기하면 그들이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식의 평범한 모습들이지만, 달리 얘기하면 인물이 아닌, 음악 자체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덕분에 필요 이상으로 표백되어 버렸다. 음악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 없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Dead의 자살 사건 정도를 제외하면 자극적 이미지 자체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센세이셔널리즘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우회하여 돌아간다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블랙메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불편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접하기는 좋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Shining이나 Watain 그루피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류의 DVD가 거의 그렇듯이 서플먼트 같은 것은 없으니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