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Pollution/Non-Metal

Arbeit - Zum Einem Neuen Licht

[Autumn Winds, 2007]

아우슈비츠의 정문에 있었던 Rudolf Hoss의 좌우명 'Arbeit Macht Frei'(즉,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 때문인지, 인생에 알바 경력도 별로 없지만 이 Arbeit라는 단어는 꽤 익숙한 편이다. 물론 이 장르의 팬이라면 이런 식의 이미지가 밴드의 정치적 스탠스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사실 이들은 독일 출신도 아니다. Greg L. 이라는 프랑스 뮤지션의 원맨 프로젝트이니 그런 혐의는 아무래도 좀 덜 받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전쟁, 특히 2차대전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martial industrial이라는 장르에서 2차대전 만큼 풍요로운 소재의 보고도 없을 것이다. 굳이 정치성을 물고 늘어지려는 사람에게는, 이들의 앨범 제목인 "Zum Einem Neuen Licht" 자체가 전쟁이라는 소재를 생각하면 꽤나 역설적인 것인 만큼(대충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간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무리 없다), 그런 텍스트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나, 정도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Folkstorm의 "Information Blitzkrieg" 같은 것을 기대한지라, 첫 곡인 'Totalen Krieg' 부터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다. 반복되는 사이렌 소리의 루핑과 조금은 인조적인 감이 강한 퍼커션음에 히틀러의 음성이 겹쳐진다. 진짜 오르간을 사용했다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그러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신서사이저 연주가 분위기를 나름 주도해 나가는데 아무래도 오르간 연주라는 느낌보다는 전자음이라는 느낌이 더 강한 연주이다. Folkstorm 정도에 이르는 강한 사운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은 앨범을 찾기도 힘들지만, 호전적인 분위기를 의도치 않은 곡들의 경우는 단조풍의 세미 클래식까지 생각나게 하는 스트링 연주에 2차대전기의 음성이나 음향을 샘플링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은 수준이다. 그만큼 퍼커션이나 샘플링 등의 부분을 제외하면 이들은 네오클래시컬 튠이 강한 편인데, 그럼에도 Penitent 같은 프로젝트 등과는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그 시대의 분위기 등을 재현한다기보다는, 텍스트화된 그 시절의 얘기를 어디까지나 '현재의 시점에서' - 물론 중간중간 이 시절 군가에서 따 온 듯한 멜로디가 보이기는 한다만, 'Solitude' 같은 곡의 좀 더 현대적인 피아노 연주를 생각해 보면 - 조금은 담담하게 표현하는 앨범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점이 좀 더 호전적인 작풍을 견지하는 martial 밴드와는 차이가 있다. 'Mein Vaterland bittet mich zu sterben' 같은 곡의 후반부에 나오는 굉음들이 그나마 전쟁의 풍경에 가까운 편이고, 그런 부분들을 둘러싸는 것은 어두운 분위기의 피아노나 신서사이저 연주 등이다. 프랑스 출신이니 Dernière Volonté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는데, 이들이 좀 더 어둡게 곡을 쓰는 편이다. 덕분에 로우파이한 효과음(포탄 터지는 소리나, 탱크 굴러가는 소리 등)은 그들보다도 더 주변 연주와 대조가 강한 편이다만, 다른 부분은 오히려 더 모노톤의 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잘 보면, 이 앨범이 구체적인 컨셉트를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앨범의 곡들은 어느 정도의 흐름을 가지고 배치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전면전을 선언하는 'Totalen Krieg' 부터, 아예 총 장전하는 소리의 루핑을 리듬으로 이용하는 'Le Chant du Diable', 제목부터 다분히 '전투 후의 풍경을 그리려는 의도' 적이라고 느껴지는 'Tod ist mein Schicksal' 이나 'Solitude' 에서 역시 모노톤의 피날레인 'Das Ende' 까지의 흐름은 분명하다. 'Russia' 을 전후로 조금 변화가 있었다면 더 극명했을 듯한데, 그건 아니지만 뭐, 내 생각에는 그렇다. 전체적인 이 '모노톤' 의 앨범이 곡 내부에서의 변화가 아닌 그런 큰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게 좀 억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원래 bombastic한 앨범을 더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 나름 확실한 건 2차대전에 대한 - 이거저거 터지고 쏘고 하는 게 아닌 - 스펙터클한 풍경이 아닌, 건조하고 황량한 풍경을 그린 앨범이고, 의외로 스트링을 이용한 서정성이 꽤 어울리는 앨범이라는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장르의 미덕에는 아주 충실한 앨범이다. 아무래도 이 장르의 가장 파괴적인 부분은 앨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만큼, 이 장르의 팬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