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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Writings

소리와 권력, 그리고 몇 가지 중언부언

Emperor - Live Inferno/Live at Wacken Open Air 2006 앨범 포스팅에 '짜빠게티요리사' 님이 남겨 주신 댓글에 대한(다시 댓글로 달기에는 너무 길어서) 응답성 포스팅. 편의상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항상 쓰지 않고 포스팅을 하다 보니, 갑자기 글로 쓰려니까... 좀 어색하더군요. (뭐 그래도 나름 예절바른 사람이니 나쁘게 보진 말아 주시길)



20세기 이전에 음악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런 논의가 르네상스 이후, 음악이 귀족 사회의 여흥이었던 기간 동안에는 존재하기 어려웠다고 할 것이고, 적어도 20세기 이전의 이런 논의는 말 그대로 '예술' 이라는 범주에서만 이루어져 왔다면, 20세기 현대 예술이 등장하게 되면서 음악의 기능 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는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Music-therapy나, 얼마 전에 조현오 경찰청장이 얘기했던 음향대포와 같은 것은 가장 직접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기능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음악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명제의 다른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단지 심미적인 것에서 벗어난 '실용 음악' 의 측면이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20세기 이전에도 실용 음악은 '당연히' 존재했지만, 그 측면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진 것은 오늘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라는 속성도 이에 연관될 것이다. 인간의 사회에서 권력을 논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권력' 일 것이기 때문이다.[각주:1]

그런데 권력은 음악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떠한 소리가 존재하고, 그 소리가 바로 '음악' 이기 때문에 권력이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Murray Schafer가 큰 소리를 권력이라고 한 맥락은, 소리는 다른 행동들의 틈을 파고들고,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더 넓은 공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소리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다. Hitler가 말했던, '확성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독일을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더 쉬운 예는 이런 것일 것이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거기다 청각은 시각에 비해서 확실히 더욱 '즉물적이다'. 듣기는 세계와 거리를 두지 않고, 오히려 세계를 받아들인다. "음은 거리를 두지 않고 침투한다."[각주:2]



물론 권력은 소리를 소거시키기도 한다. MP3 플레이어의 소리를 줄이는 것은 상관없을 수 있지만,
이는 누군가의 목소리까지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역사가 소리와 권력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부분의 연구는 지금도 지속 중일 것이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내 생각에는 이 부분이 상당히 큰데, 이런 연구가 보통 우익적 단체들의 '퇴폐적인/폭력적인' 음악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는 식의 주장의 근거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소리나 음악적 요소가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사람을 어떤 상태로 만들고, 상징적 형태로 인식하도록 하는지' 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고, 사실 일률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Emperor에서 탁월함이나 권력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시끄러워서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도 분명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가시적인 현상이 된 '취향의 사회학' 도 아마도 이를 보여 줄 것이다. 일률적 원리가 있다면, 어째서 그런 사회학이 존재하는가?

여기서 Schafer나 나는 '소리' 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이것이 음악과 이분법적으로 구별되는 개념은 당연히 아니다. Schafer가 얘기하는 '사운드스케이프' 의 개념은 일종의 '소리환경' 을 의미하는 것이다.[각주:3] 잠시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이 영역은 사운드스케이프의 중요한 특징을 기록하고, 그 차이, 유사성, 경향을 적어놓고, 사라질 위기에 있는 소리를 수집하고, 새로운 소리가 분별없이 방출되기 이전에 그것의 영향을 조사하고, 인간에 대해 소리가 갖고 있는 풍부한 상징성을 연구하고, 다른 소리환경에서 인간의 행동패턴을 연구하고 것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모두 인류를 위한 미래의 환경을 계획하는데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사운드스케이프 개념 자체가 인간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위의 글(Inferno 라이브)에서 '다른 맥락에서' Emperor가 권력을 음악적으로 엮어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다. 헤비메틀은 통상 엄청난 음량 덕분에 일반 대중 음악의 논의에서 소음과 항상 연계되어 왔다(물론 이는 노이즈 음악도 동일할 것이다). 블랙메틀은 그 중에서도 더 큰 음량을 가진 경우일 것이니, 소음 정도가 아닌 '굉음'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각주:4] 록/메틀 밴드의 연주 및 공연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을 생각할 때(물론 이는 음악에 대한 기존의 담론과 크게 틀리지 않다), 음악적인 것과 비음악적인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훈련된 비르투오시티를 갖춘 연주자와 그렇지 않은 연주자 간의 위계는 물론, 그런 비르투오시티와 공간적인 면이 함께 작용하는 연주자-관객 간의 위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인데,[각주:5] Emperor는 적어도 공연장이라는 공간에 있어 그런 위계를 극대화시킬 음악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위계를 권력이라 표현한 것이다. 남성성의 문제는 이와는 좀 다른 맥락일 것인데, 헤비메틀의 정형에서 블루칼라 노동자와 남성 중심적 이미지를 발견하는 견해는 계속 주장되어 왔지만, 이는 사운드스케이프보다는 헤비메틀과 그 수용자들의 하위 문화라는 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장에서 청중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메틀 공연장은 분명 그 외 음악 공연의 경우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사진은 Slayer의 라이브.


우리의 경우, 왜 '음악' 을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일률적인 스타일에 가까운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 음악을 안 듣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외국의 음악을 더 많이 듣는 처지인지라 말하기가 조심스럽기는 한데, 개인의 역량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창의보다는 모방을 좋아하는 성격 등의 국민성이 반영되었다는 생각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창의와 모방은 다른 용어로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이 쏟아져 나오고, 그 대부분이 국내에 '수입' 의 형태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창의를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모방이라는 것이 음악에서는 무조건 금기시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사실 아티스트의 창의력, 등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은 창작이라는 예술가의 임무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지만, 소위 세련됨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작용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어째서 계속 대중 음악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구현할 것을 요구하는가? 7~80년대의 스타일을 오늘날에 재현하는 식의 음악을 한다고 해서 이를 곧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 레트로 밴드들, 주요 차트에 등장했던 네오 거라지 밴드들은 창의력이 부족한 것인가.

그래서 아마도 국내 밴드의 음악을 들었을 때, 국내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창작자의 국민성 등이라기보다는, 중간에 말씀하신 '한국의 사정' 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는 문화적 환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환경 등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부적당한 예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종종 외국의 것이 아닌, 우리의 록 음악을 만들자고 하면서, 괴이하게(부탁인데, 하려면 잘 좀 해라) 전통 악기를 끼워넣는 시도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삽입된 전통 악기를 일종의 상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악기가 삽입된 환경적 맥락일 것이다. 사실 외국 밴드의 음악이라도 우리의 전통 악기가 들어가는 것이(물론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건 우리의 전통 음악이 세계에 어느 이상 알려진 뒤에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비틀즈는 시타도 쓰지 않았나.

  1. Mikel Dufrenne, "Subversion-Perversion", P.U.F., 1977, p.34. "권력은 단순히 무엇을 하는 권력이 아니라 무엇에 대한 권력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구속하는 권력이다." [본문으로]
  2. Helmuth Plessner, "Anthropologie der Sinne", "Gesammelte Schriften", Frankfurt a.M. 1980, p.344. [본문으로]
  3. Murray Schafer는 "The Soundscape: our sonic environment and the tuning of the world" 에서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을 설명하는 세 가지 요소로 'keynote sound', 'signal', 'soundmark' 를 제시한다. [본문으로]
  4. 물론 이 '소음' 과 '굉음' 이 음악과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John Cage 이후 소음도 음악의 요소가 될 수 있고, Schaffer에 따르면 '소음' 은 음량과 지속시간으로 판단되는 것이니, 음악적 양식을 갖추었느냐와는 별개이다. [본문으로]
  5. 물론 이런 '위계' 를 극복하려는 밴드들의 전략들도 존재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노이즈 밴드나, 그 외 즉흥을 중시하는 밴드들일 것이다. 작품 개념의 붕괴와 모니터의 필요성의 제거 등이 문제될 것인데, 적어도 대부분의 '록/메틀 밴드' 에게는 이는 해당이 없을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