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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Therapy? - Troublegum

[A&M, 1994]

몇몇은 꽤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Therapy? 는 아마 이 블로그에 올라온 이런저런 밴드들 중 가장 이 곳에 안 어울릴 법한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밴드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Chris Sheldon은 Pixies와 Foo Fighters를 맡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물론 슬슬 욕 먹기 시작할 시점의 Anthrax이긴 하지만)Chris Sheldon은 Anthrax를 프로듀스한 바도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앨범이 나온 1994년은 역시 그런지의 시대였겠지만, 이들은 그런지 밴드가 아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들은 동시대의 '얼터너티브' 밴드들 중 가장 메틀릭한 리프를 가진 이들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Kurt Cobain은 생전에 Black Sabbath와 Dead Kennedys에 대한 애착을 술회한 바 있었는데, 적어도 이들이 Nirvana보다 메틀을 더 좋아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마 그 가장 단적인 예가 이 앨범일 것이다. 'Knives' 의 날카로운 파워 코드로 시작하는 이 앨범은, 그렇지만 파워 코드를 꽤 자주 사용한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얼터너티브에도, 파워 팝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Nurse" 시절의 스타일에 그래도 유사한 'Knives' 가 끝나고, 'Screamager' 부터는 거친 메틀 리프가 등장하기 시작한다(물론 이 곡도 인트로는 파워 코드이긴 하다). 테크니컬하진 않지만 꽤 빠른 로큰롤 패턴의 리프에 인상적인 가사(아마도 청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인상적일) 'with a face like this I won’t break any hearts, and thinking like that I won’t make any friends’ 가 등장하는 'Screamager' 는 이들이 어떻게 그 시대에 새로 나타나는 조류와 사라지는 조류를 나름대로 접목시켰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면서, 아마도 밴드가 만들었던 곡들 중 최고일 것이다. 이후로도 밴드는 앨범에서 반복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Hellbelly' 에서의 'The World is fucked, and So am I' 또한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앨범을 메틀 앨범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Screamager' 나 'Hellbelly', 'Unbeliever' 등의 곡의 메틀릭한 리프가 있지만, 이 앨범을 이끌어 가는 숱한 파워 코드와, 그 메틀 리프와 리프 사이를 잇는 펑크풍의 패시지는 이들이 80년대의 메틀 밴드와는(물론 이들도 89년부터 활동하긴 했다)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Joy Division의 커버곡인 'Isolation' 이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Joy Division은 많은 둠-데스 밴드들에게 커버되기도 했으나(말하고 보니 그리 많지는 않은데), 아마 이들 식으로 일렉트로닉스까지 써 가며 로큰롤로 커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곡이 앨범에서 리프의 힘이 가장 약한 곡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Therapy? 가 Joy Division보다 메틀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국 밴드는 아니지만 아일랜드 출신이어서 그런지 파워 팝의 모습도 분명히 엿보인다.

그래서 이 앨범에서의 Therapy?는 (과장 좀 많이 섞어서)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가 터져나오며 헤비메틀이 차트에서 그 힘을 잃어버리던 시절, 차트에 뚜렷한 모습을 보이던 밴드들 가운데 가장 메틀릭한 리프를 가지고 있던 밴드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이들이 그 시절의 그런지 캠프의 일원이라거나, 네오 펑크 밴드들의 길을 닦아 둔 밴드였다는 식으로만 얘기한다면 사실 꽤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분명 나름의 '팝' 을 연주하던 밴드였지만('Nowhere' 는 국내의 라디오 광고에도 등장할 정도) 적어도 그 시절 차트를 넘나들던 밴드들 가운데는 가장 에너제틱한 이들이었다, 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 앨범만은 그런 얘기를 들을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