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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Writings

Brooklyn Black Metal



북유럽에 가 본 적은 없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 보아야 (역시 진위를 완전히 확신하지 못할)활자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북유럽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미지 또한 그러할 것이다. 메틀헤드라면 역시 그에 더해지는 이미지가 있다. 베르겐이나 예테보리를 중심으로 했던 블랙메틀이나 멜로딕 데스의 향연이 그렇고, 좀 더 열심히 들은 이들이라면 뿔 모양으로 휘어진 잔을 들고 맥주를 호방하게 마시는, 턱수염이 풍성하고 콧날 오똑한 금발의 바이킹들을 상상할 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북유럽이라고 하지만(물론 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 모두 각자의 특색이 있지만, 편의상 뭉뚱그려 얘기한다) 그 장소에는 '어디' 외의 반응이 내포된다. 우리들에게도 그렇고, 거기 사는 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약간의 환상이 동반되기도 하는)이미지로만 그에 다가가는 우리와는 달리,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메틀헤드들)에게는 삶의 장소로서 그에 따른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것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어느 쪽에서 연상 작용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우리는 북유럽의 풍경과 위의 블랙메틀/멜로딕 데스메틀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는 유물론자다. 풍경이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근래에 보이는 'brooklyn black metal' 이라는 말은 사실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뉴욕의 깎아지른 마천루들은 우리가 아는 '블랙메틀에 어울리는 풍경' 에는 전혀 맞지 않아 보인다. 물론 위의, 음악과 그 환경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일관된 건 아니라는 정도는 모두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말이 나올 정도로 경향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편이다. 브루클린이 맨하탄과는 달리 '깔끔한 대도시' 의 풍경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역시 가 보지는 못했지만, 브루클린은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먼 뉴욕의 일반적인 이들의 치열한 삶이 이어지는 구역이라고 한다. 인더스트리얼 뮤직도 아닌 익스트림메틀이 갑자기 브루클린에서 튀어나온 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하면 언뜻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필 '힙스터들의 전당' 이었던 뉴욕에서 이런 강경한 음악이 튀어나왔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음악에서 기존의 블랙메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기독교' 등에 대한 분노나 'pagan' 함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Liturgy의 "Aesthetica" 같은 앨범이 들려주는 사이키델리아는 분명한 예라고 생각한다. Velvet Underground의 도시였으니 그런 사이키델리함, 내지는 다른 조류와의 결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닌지라, 이들의 음악에서는 마약 냄새 나는(하지만 어두운) 노이즈가 가득하다. 이런 묵직한 음악이 New Yorker 지에도 소개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런 뉴욕의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Krallice나 Liturgy 등의 밴드에서 슈게이징(이건 이미 일반적일지도)이나 뉴욕 하드코어, 포스트펑크 등의 특성을 찾아내는 건 사실 쉬운 일이다. Liturgy의 저 앨범 명이 보여주듯이, 이들은 그 나름대로의 새로운 미학적 방법을 찾아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새 주변에서 true metal, false metal 얘기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런 음악이야말로 false metal의 정점이 될 것이다) 일부 밴드들의 경우, 블랙메틀의 영향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를 블랙메틀의 범주에서 제외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


"Krallice는 블랙메틀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는 그들이 블랙메틀을 연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중략)... 개인적으로 내가 어떤 종류의 음악에 흥미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뉴욕이나 맨하탄이 즐기는 음악이라고 내가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난 힙합이나 파티 뮤직, 인디 록 등을 보통 듣지 않는다. 브루클린에는 그 이상의 언더그라운드가 있다 - 그들은 앨범을 판매하고, 공연을 한다." - Mike Hill(Tombs)

그렇게 치면, 이 '브루클린 블랙 메틀' 을 블랙메틀의 범주에 넣는 게 얼마나 타당할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의문이 든다. 물론, 사운드의 질감이라는 면에서는 블랙메틀이라고 부르는 게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 음악은 태생적으로 블랙메틀과는 다른 방향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2세대' 블랙메틀 밴드들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기독교, 또는 그와 같은 가치들의 자리에, 이 브루클린의 밴드들은 브루클린에서의 팍팍한 삶, 과 황막한 잿빛 풍경을 놓고, 뉴욕이 그들에게 가르쳐 준 서사를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그들의 또 다른 사운드를 이끌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눈에 비친 풍경도, 2세대 밴드들이 기독교 등을 바라보았던 것만큼이나 '어두웠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주된 무기로 삼았던 사운드가 블랙메틀에 가까웠을 뿐이다. 이 친구들도 스래쉬메틀과 데스메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뭐, 어쨌든 이들이 블랙메틀인지 떠나서, 블랙메틀이란 음악이 새로운 토양과 시대에서 나름의 생명력을 계속 얻어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지금은, 브루클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