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senal of the Left/Writings

Digital albums

나야 '피지컬 미디어' 를 좋아하고 수집하는 사람이지만, 근래는 역시 디지털이 대세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피지컬 미디어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흘러간 명 밴드들의 앨범들의 재발매반들은, 예전에 그 앨범이 나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패키지를 갖고 있다. 굳이 예를 들 필요는 없겠지만, Pink Floyd와 Beatles 등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런 현상은 앞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미디어의 질료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Pink Floyd의 결성 40주년에도, 다시 10년이 지난 50주년에도, EMI가 도산하거나 하지 않는 한 재발매반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 세밀하고 화려한 패키지 등이 피지컬 미디어의 매력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하지는 않더라도 한 부분이라는 것 또한 부정하기는 어려울 법하다.

그래서 많은 컬렉터들이 디지털 시대가 앨범 커버 아트, 등, 음악 외에 음반으로 구현되는 다른 부분을 파괴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파일을 다운로드하면서 살짝 보이는 썸네일 정도 크기의 이미지에서 많은 것을 확인하는 일은 육안으로는 그리 쉽지만은 않다. 바이닐 앨범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대부분은 한정반의 포맷이다), 이런저런 머천다이즈들의 판매고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 등을 본다면, 그런 볼멘소리들처럼 디지털 아트의 영향력에 대해 악평을 늘어놓을 것까지는(뭐, 음반의 시대는 죽었다, 식으로)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이제 '피지컬 미디어' 가 음반 시장의 주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다만 그렇다면, 분명히 음악과 함께 '예술 작품' 으로서의 음반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앨범 아트 등은 디지털 미디어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남아공의 포스트/프로그레시브 메틀 밴드(Intronaut와 Russian Circles가 생각난달까) The Ocean Doesn't Want Me의 경우는, 그리 대단할 건 없지만 그런 류의 생각에서 나타난 시도라고 생각한다. 금년 초에 나온 디지털 앨범인 "As the Dust Settles" 는 앨범 커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 각각의 곡별로 그에 맞는 다른 이미지(이 앨범에서는, 자연 풍경)를 부여한다. 모든 앨범에 이런 방식이 이용될 수는 없겠지만(각각의 곡들이 개별적으로 수록된 앨범이 아니라면, 굳이 이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른 시도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인터랙티브' 한 디지털 부클렛이 있는 셈이다. 그런 인터랙티브한 시도는 더 나아가, 수용자와 창작자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 각자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 컨텐츠를 창작해 제공하는 것은 창작자이지만,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향유하는 수용자가 그 조작을 통해서 변형할 수 있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좌측부터 앨범 커버, 'Roots points the way', 'Van Eyck' 의 이미지.

그렇다면 디지털 미디어와 피지컬 미디어의 차이는 단지 음악 외적인 부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음악 자체의 창작에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창작' 과 '이용' 의 구분을 어느 선에서 할 것인지(아, 이런 것도 직업병이다)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디지털의 시대가 음반이라는 형식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기보다는, 아무래도 전대미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또 물론, 그럼에도 디지털 미디어가 피지컬 미디어를 완전히 대체하지도 않지 않을까, 라고 여겨진다. 어찌 됐든, 디지털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이후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