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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Cynic - The Portal Tapes

[Season of Mist, 2012]

Cynic이 "Focus" 를 발매했던 것이 거의 20년 전이니, 당시의 상황은 아무래도 지금과 같을 수는 없겠다. 사실, "Focus" 의 음악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렇게 데스메틀과 재즈, 프로그레시브 등이 결합된 음악은 찾기 어려웠다(기껏해야 Atheist, Disharmonic Orchestra?). 그러고 보면, 당시 Roadrunner가 왜 이런 밴드를 그렇게 홍보를 못 했는지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아마도 레이블은 이 새로운 모습의 밴드를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잘 몰랐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Cynic이 이미 잘 알려져 있던 데스메틀 밴드들과도 꽤 잘 어울리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Chris Barnes가 마이크를 잡았던, Cynic 버전의 'I Cum Blood' 가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그랬던 밴드임을 생각하면 요새의 모습은 사실 당혹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래도 메틀릭한 면이 있었던 "Traced in Air" 도 그렇지만, "Carbon-Based Anatomy" 의 몽환적인 사운드는 "Focus" 를 생각하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물론 Cynic이 아닌, Portal의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이지만, 원래 이 음악이 만들어진 때는 1995년이고, Aruna Abrams를 제외하면 다들 Cynic의 멤버 겸 라이브 세션(Chris Kringel)이니 Cynic의 음악적 노정에서 파악하는 게 사실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1995년의 데모를 리마스터하여 "Carbon-Based Anatomy" EP 이후에 나온 이 앨범은 사실 그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려운 앨범이다. 그만큼 당시로서 혁신적인 사운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Cynic 자체는 혁신적인 밴드라고 할 수 있겠지만, Portal의 음악은 데스메틀과 거리가 있는 프로그레시브 메틀이니, 그렇게까지 평가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얘기한 근래의 Cynic의 변화상이 사실은 벌써 한참 전에 예상되어 있었던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두텁지는 않지만 차가운 느낌의 신서사이저 연주와 프로그레시브한 기타 연주, 아무래도 'dreamy' 한 인상을 주는(사실, 이 앨범에서는 보컬의 가사보다는 그 음색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 보컬, 명징하게 템포를 잡아간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최면적인 느낌에 치중하는(Sean Reinert가 참여한 다른 앨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만) 드럼 연주는 분명 "Focus" 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Portal 이후에 Sean Reinert와 Paul Masvidal이 왜 Aeon Spoke로 활동하게 되었는지 납득시켜 주는 음악이기도 하다. Aeon Spoke도 메틀릭하다기보다는(사실 이 밴드는 좀 '얼터너티브' 하기까지 했다) 그런 두루뭉실한 사운드를 구축하는 밴드였다.

말하자면, Cynic의 앨범 중에 "Traced in Air" 와 "Carbon-Based Anatomy"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사운드를 구사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Masvidal이나 Gobel의 리프는 이 앨범에서도 꽤 복잡한 구성을 보여주는데, 앰비언스를 의도해서인지 기타 톤 또한 "Focus" 같은 앨범에서만큼 명징하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그나마 'Circle' 정도가 기타 위주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편이다). Tracy Hitchings를 생각나게도 하는 Aruna의 보컬과 Masvidal의 보컬이 서로 교차하는 부분도 있는데, 명백히 'ethereal' 한 Aruna의 보컬(언제 Cynic의 음악에서 크루너 보컬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과 Masvidal의 보컬은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Chris Kringel의 프렛리스 베이스 연주도 리듬을 구축하는 외에 분위기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에서는 철저하게 밴드 지향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어느 파트도 돋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멤버 전원이 알아 주는 테크니션임을 생각하면(Aruna 정도나 예외랄까) 이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도 이 앨범의 장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 편이다. 극단적으로 앰비언트라고 얘기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Costumed in Grace' 같은 곡을 들어 보면 괜한 소리도 아니다), 사이키델릭한 면모를 보이는 프로그레시브 록/메틀이라는 이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메틀 사운드를 기대한 이에게는 이 앨범은 사실 추천할 만한 앨범은 아니다. 기존의 Cynic의 팬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음악을 듣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사운드의 폭을 넓게 가져감으로 인해서 밴드가 이 앨범에서 Cynic에서보다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된다. 'Costumed in Grace' 같은 곡도 그렇고, Faith No More 생각이 조금 나기도 하는 'Mirror Child', 신서사이저가 구축하는 사운드의 벽 속에 다른 파트들이 복잡한 구조를 보여주는(그래서 예전 Cynic 생각이 나게도 하는) 'Circle' 같은 곡이 한 앨범에서 일관된 흐름을로 보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꽤 좋게 들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을 'Cynic의 앨범으로서'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차라리 Cynic 멤버들이 하는 프로그레시브 프로젝트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법한 사운드일 것이다. 사실 "Carbon-Based Anatomy" EP에도 이런 식의 불만을 갖는 편인데, 결국은 음악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이 앨범이 Cynic의 이름으로 나왔다는 점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분명 노작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