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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Translations

Skinhead Culture, as a Anti-Fascist movement

'스킨헤드' 는 어쩌면, 현대에 와서는 펑크를 상징하는 단어의 하나일 것이다. 가장 정치적인 록 무브먼트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고 있건대, 몇 가지의 의문점은 항상 제기된다. '노동계층' 의 음악(이라고 여겨질)인 펑크가 어떻게 극우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가와, 스킨헤드 컬쳐 자체의 모습이 그러할 것이다. 당신은 모호크와 스킨헤드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가?



[http://libcom.org/history/1960-today-skinhead-culture]


'스킨헤드' 라는 단어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인 것이 아니다. 문화 집단으로서, 스킨헤드는 어리석고, 폭력적이며, 인종주의적인 집단으로 보여져 왔다. 다양한 종류의 인종들이 극우적 집단에 속하거나, 인종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스킨헤드 컬쳐의 본질은, 어떠한 백인 우월주의적 집단들보다는 다인종적 노동계층에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킨헤드 컬쳐는 1960년대 초/중반 영국 문화와 사회에 있어서의 두 가지 변화의 결과로서 나타났다. 먼저, 영국의 젊은 층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모드(Mod) 씬은 서로 다른 분파들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중산계급의 모드족들은 최신 카너비 스트리트의 의상과 패셔너블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고, 이는 대부분의 노동계급 모드족들에게는 가능하지 못한 것이었다. 소비주의(consumerism)에 크게 기반하는 씬에서, 이는 씬에 참여하는 노동계층 모드족의 지위와 능력을 저해하는 것이었다. 이는 스스로를 이발된 머리와, 타이트한 청바지, 바지 멜빵(braces), 작업용 장화로 특징짓는 하드 모드족(hard Mods)의 출현을 가져왔다. 이런, 당대의 영국 노동자의 일반적인 모습에 기반한 스타일은 그들을 당대의 세대의 구(舊) 모드족들과 중산층 히피들과 구별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것은 "노동계급 젊은이들이 계급 중심적 사회에서 그들의 저급한(marginal) 지위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의식적인 시도" 였다.

동시에, 런던의 자메이카 이주민들의 유입이 있었다. 그들은 자메이카의 거친 소년들의 문화(boy culture)와, 레게, 스카를 가져왔다. 그들 중 상당수가 런던의 항구에서 일을 했고, 이스트엔드의 노동계층 공동체에서 생활했다. 서로 가깝게 살게 된 결과, '원래의' 하드 모드족들은 자메이카의 거친 소년들과 어울려, 그 삶의 방식들과 속어들, 춤을 교환하였고, 이는 서인도 제도의 댄스 홀에서 모든 최근의 스카, 레게, 소울 레코드들에까지 이른다.

이런 점을 떠나서도, 스킨헤드는 많은 젊은이들이 당대에 가졌던 불만의 표현으로서 경찰력, 공권력, 상류층들에 대한 적대성으로 명확하게 특징지어지는 노동계층 젊은이들의 다인종적 서브컬쳐로서 시작하였다. 이 문화는 1969년에 정점을이루면서 짧은 기간 융성했을 뿐, 1970년대 초반부터 내적 폭력과 미디어에 대한 히스테리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킨헤드가 1970년대 초에 끝났다고 말한다면 이는 틀린 것이며, 1970년대 후반에 스킨헤드는 복귀하여 국제적으로, 유럽과 북미에까지 퍼져 나갔다. 유감스럽게도, 영국에서의 스킨헤드 컬쳐의 재기는 씬에 있어서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목도했다. 스킨헤드들은 더 이상 자메이카의 거친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지 않았고, 힘을 얻기 시작한 펑크 무브먼트와 더 긴밀하게 연관되었으며, National Front와 같은 극우 집단과, British Movement와 같은 더 급진적인 네오나치 그룹의 신입회원 모집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파시스트 그룹들은 의식적으로 인종주의자 스킨헤드들(반인종주의 스킨헤드들은 그들을 'Boneheads' 라 불렀다)을 그들의 이민자들, 소수인종들, 사회주의자들과의 거리에서의 싸움에 동원하기 위해 끌어들였다. 이러한 과정은 이런 새로운 서브컬쳐를 은연중에 인종주의적인 것으로 기술하는 미디어에 의해 한층 심화되었다. 또한, 1980년대 중반까지 극우 음악 무브먼트인 Blood & Honour는 나치 스킨헤드/펑크 밴드들의 메인 디스트리뷰터로서 세계에 걸쳐 큰 공연들을 기획하고 잡지들을 발간하였다.

극우 행동주의는 또한 북미, 심지어 유럽의 스킨헤드 씬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테마가 되었다(미국에서는 인종주의자가 아닌 스킨헤드도 있을 것이나, 유럽의 모든 스킨헤드들은 나치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미국의 인종주의자 스킨헤드들은 처음에 스스로 패거리를 조직하여 펑크족들과 유색인종, 반인종주의 스킨헤드들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인종주의자 스킨헤드들의 증가하는 폭력으로 인해, 반인종주의 스킨헤드들도 스스로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1986년, 미국 최초의 반인종주의 스킨헤드 그룹인 the Baldies가 네오나치 갱단인 the White Knights와 싸우기 위해 미네아폴리스에서 결성되었다. 1987년, Skinheads Against Racial Prejudice(SHARP)가 스킨헤드를 폭력적인 인종주의자로서 표현하는 미디어와 싸우고, 스킨헤드 컬쳐의 다인종적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또한 당대 뉴욕에서 활동하던 인종주의자 스킨헤드 씬을 뉴욕에서 제거하는 데 동의하였다. SHARP의 행동방식은 미국 전역의 다른 도시들로 퍼져 나갔고, 1998년에는 유럽의 도시들에도 SHARP의 조직들이 생겨났다. 그 외에 다른 반인종주의 스킨헤드 그룹들도 존재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RASH – Red and Anarchist Skinheads - 가 있다.

오늘날, 스킨헤드들은 국제적인 젊은이들의 서브컬쳐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해서 기여하고 있다. 여전히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인종주의적 색채들을 보유하고 있으나, 씬의 내외에서 기여한 반파시스트들의 노력으로 인해, 나치 스킨헤드는 그 주변부로 밀려났다. 많은 파시스트 공연들이 분쇄되고 저지되며, 나치 음악을 취급하는 매장들은 그들이 이를 그만두고 나치 스킨헤드 씬 전체가 언더그라운드로 침잠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늘날 영국에서 나치 스킨헤드들은 비밀리에, 가명으로 공연장을 예약하고, 때로는 야간에 경찰에 그들의 신변을 보호할 것을 요구하면서 몰래 공연을 조직해야만 한다.

이 글은 스킨헤드 컬쳐를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때 인종주의적이었고, 어리석을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스킨헤드 컬쳐가 흑인, 백인 모두의, 노동계급 젊은이들의 불만과 사회 주류에서의 소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의 정치학을 견지하는 상당수의 스킨헤드족들이 항상 존재해 왔고, 사회를 움직이는 이들에 대해 우리의 문제들에 대한 불만을 정당하고 직접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를 인종이나 태어난 국가로서 구별짓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