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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Heir Apparent - Graceful Inheritance

[Black Dragon, 1986]

시애틀이야 바로 떠오르는 음악은 (록 팬이라면)물론 그런지겠지만 생각해 보면 시애틀 출신의 메틀 밴드들 중에도 꽤 족적을 남긴 이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건 Nevermore와 Sanctuary가 있겠고(물론 그놈이 그놈이긴 하다), Dark Symphonies에서 앨범을 냈던 Corvus Corax가 있고, 흘러간 Culprit가 있고, 데스메틀이라면 Drawn and Quartered가 있고, 기타리스트라면 James Byrd(Atlantis Rising의 그 분)가 있겠다. 어째 쓰다 보니 James Byrd와 Nevermore 말고는 사실 그 족적 한번 참 미약한 이들만 생각이 나는지는 모르겠는데, 각설하고, 이런 시애틀 출신의 메틀 밴드들 중에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준 밴드라면 개인적으로는 Heir Apparent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정규 앨범은 두 장만 내고(그나마 둘 다 80년대) 계속 데모만 내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이 근성의 파워 메틀 밴드의 1986년 데뷔작인데 앨범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판타지라는 점에서는 80년대의 '에픽 메틀' 에 가장 가까운 이들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파워 메틀이라지만 사실 상당히 다채로운 구성의 이 앨범은 덕분에 Queensryche와 꽤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굳이 비교한다면 "The Warning" 시절의 Queensryche의 스타일에서 좀 더 베이스를 강조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진대, 아무래도 거의 Steve Harris까지 연상케 하는 Derek Peace의 베이스라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특히 'Dragon's Lair' 같은 곡이 더욱 그렇다). 꽤 변화가 심한 곡의 구성을 생각하면(미드템포에서 스피드 메틀 스타일까지 등장하는) 드럼이 의외로 별로 나서지 않는 점은 특이하게 보이는데, 안정적으로 곡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Paul Davidson의 보컬이 전면에 나서는 편인데, 사실 NWOBHM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스타일의 보컬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미국 밴드가 Geoff Tate와는 다르게 들리는 보컬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메리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Terry Gorle의 기타가 밴드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데, 워낙에 기세 어린 베이스라인을 가지고 있는 밴드인 탓에 기타가 곡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상당히 힘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런 힘있는 연주 덕분에, 다채롭다고는 하지만 앨범은 그래도 파워 메틀의 전형에 가깝다. 'Running from the Thunder' 같은 곡이 예외적으로 재즈적인 느낌까지 날 정도의 임프로바이징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앨범의 흐름을 끊는 편은 아니다(앨범에서 이질적인 곡임에는 분명하다). 다양한 구성은 프로그레시브한 작풍이라기보다는 곡에 드라마틱을 부여하는 장치로 이용되는데, 이런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은 미드템포의 'Tear Down the Walls' 라고 생각한다. 곡은 전형적인 NWOBHM의 구조와 힘있는 기타 연주, 인습적인 코러스를 가지고 있지만 그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간다. 그런 면에서 이 밴드의 가장 큰 미덕은 한 곡에 있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너무 많은 변화를 곡에 집어넣으려고 했다가는 기초가 되는 파워 메틀의 구조를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장광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파워 메틀 밴드로서 이들은 정말 훌륭한 리프메이커들이었다. 다양한 구성을 가져간다고는 했지만 기실, 이 앨범의 곡들은 그리 긴 편이 아니다(이 앨범은 13곡에 46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다채로운 구성을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곡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리프라고 생각한다. Queensryche보다 좀 더 테크니컬한 스타일의 리프를 가져가는 Terry의 기타는 역시 복잡한 베이스라인과 경쟁하듯이 움직이는데,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리프를 해하지 않는다는 점이 밴드의 송라이팅의 견실함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은 80년대 파워 메틀 앨범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앞에서 꽤 길게 얘기를 했지만, 결국은 이 앨범은 '드라마틱한 구조와 멋진 리프를 가진 파워 메틀' 앨범인 것이다. 단단한 구성의 파워 메틀을 좋아한다면 앨범은 꼭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좋다는 얘기다.

post script :
1. 2000년에 Hellion 레코드에서 재발매가 되었는데 아직도 저렴하게 자주 보인다.
2. 이 앨범은 1986년 10월에 유럽에서 'CD' 로 발매되었다. Metal-Archives에 따르면 유럽에서 군소 레이블이 발매한 첫 CD라고 하는데, 사실 그게 믿을 만한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