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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Forgotten Silence - La Grande Bouffe

[Epidemie, 2012]

Forgotten Silence라는 이름을 꽤 오랫만에 들어 보는 것 같다. 하긴 이 밴드가 언제는 관심을 많이 받았었냐마는... 그래도 "THOTS", "Senyaan", "KabaAch" 는 나름 반향을 일으켰던 앨범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그 정도 레벨의 프로그레시브 데스 밴드는 보기 드물다는 것도 있고, (1, 2집을 제외하고는)여타 동류의 밴드보다 훨씬 중동적인 사운드(정작 이들은 체코 출신이지만)를 들려준다는 점이 이색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문제는 "Bya Bamahe Neem" EP부터의 변화이겠다. 이 EP 앨범은 아예 메틀 앨범이 아니었던데다, 이후에도 이어지는 중동풍 자체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Bya Bamahe Neem" 이 나오던 2004년에도 아예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중동풍 사운드는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으니 밴드로서는 나름의 개성을 잡아갈 방향을 조금 잘못 잡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체코 친구들은 어디까지나 유럽인이었고, 이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유럽적이면서 중동적 색깔을 가미하는 것이었으니 아예 중동 출신의 친구들의 음악만큼 컨벤션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탈형식적인 면모가 이들의 나름의 미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문제가 크다.

이 앨범의 커버는 그래서인지 확실히 그 동안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의 모습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전형에 가까운 사운드이고, 조금은 황량했던 분위기를 의도했던 전작에 비해서는 분명히 가벼운 사운드이다. 앨범 제목과 곡명들만 보아도, 전작들이 황량한 풍경이었다면 이 앨범은 활기찬 프랑스 식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곡을 배치하고 있다. 개별 곡들에는 각기 다른 인터루드들이 뒤따르고, 어디에서 따 왔을지 모를 '식당 소리' 샘플링에 뒤따르는 라운지풍 기타 연주는 확실히 밴드에게서 그간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말하자면 구성이라는 면에서는 Ephel Duath의 "The Painter's Palette" 같은 앨범에 비슷한데, 훨씬 밝고 소소한 부분에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앨범에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군데군데 밴드의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 Atheist 생각이 나는 부분이기도 한데, 'Les Collines de Senyaan Pt. III' 에서는 힘있는 피아노 연주에 맞춰 등장하는 라틴 스타일의 기타 연주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정작 그 앞의 곡이었던 'Aalborg' 가 밴드가 소시적에 연주했던 프로그레시브 데스에 가까웠던(그리고 가끔은 블랙메틀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덕분에 앨범이 담아내는 스타일은 밴드의 전작들에 비해 좀 더 다양해졌는데, 이전에 보여준 적이 없던 이 '화사함' 을 밴드는 은근 솜씨 좋게 보여주고 있다. 이 다양한 스타일들을 괴리 없이 이어 주고 있는 파트는 아무래도 Marty의 키보드라고 생각한다. 이 밴드야 원래 건반의 비중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 '프랑스 부페' 앨범이 전작들보다 더욱 다양한 장르들의 교잡을 시도하는 탓에(사실 그런 게 '부페' 에도 어울린다) 키보드는 정말 종횡무진 등장한다. 이 정도면 거의 Lazare나 Sverd 등이 그네들의 밴드에서 보여주는 모습 수준인데, Forgotten Silence가 Arcturus나 Solefald보다 좀 더 다양하다 못해 '잡다한' 스타일을 섭렵하고 있음을 본다면 Marty가 좀 더 유머러스한 작업을 해 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앨범에서 가장 다양한 스타일이 맞물리는(그리고 가장 긴) 'The Black Rider 4K8(Chanson Pour la Station de Service)' 가 대표적일 것이다. 사이키델리아에 얼터너티브 메틀까지 등장하는 모양새가 조금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들었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즐겁게 들은 앨범 중 하나이다. 밴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든 앨범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긴 6년만에 내는 정규 앨범에서 무슨 어깨에 힘을 주겠는가 싶기는 하지만.... 항상 뭔가 거창한 서사를 꾀하던 이 밴드의 모습(Forgotten Silence의 앨범만큼 부클렛이 이런저런 설명으로 꽉 차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을 생각하면 이 앨범에서의 '부페 식당' 은 어쨌든 뜻밖이니까. 그런데 뜻밖의 주제에서 의외의 재담가를 만났다는 느낌이라면 좀 더 적합하지 않나 싶다. 이 밴드야 말할 것도 없이 단련된 테크닉을 가진 이들이니, 그럼에도 음악의 집중도는 확실하다. 래스핑 보컬에 거부감이 있지 않다면 굳이 데스메틀의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좋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