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Pollution/Metal

Anubi - Kai pilnaties akis uzmerks Mirtis

[Danza Ipnotica Records, 1997]

예전에 Ra("Geniu Pustiu" 의 그 밴드)같이 중동 출신이 아니면서 그 쪽 느낌이 풍기는 이름을 달고 나오거나, 그 쪽 분위기를 풍기면서 나타나는 밴드들이 등장하던 때가 있었다(The Meads of Asphodel은 그 반대의 예였다). 'anubis' 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 'Anubi' 라는 이름도 연관되어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리투아니아 출신이라는 게 의외인 이 밴드는 사실 그 동네에서는 나름대로 '컬트' 의 반열에 이른 밴드라고 한다. 데모를 좀 내기는 했지만(그래봤자 3년뿐이지만) 정규 앨범 한 장 뿐인 밴드가 나름 컬트 소리를 듣는다는 건 흔한 얘기는 아니다. 다른 얘기기는 하지만 리더인 Lord Omnious는 2002년에 사망했는데, 꽤나 자주 들을 수 있는 블랙메틀 뮤지션들의 사망 소식과는 달리 사인이 미시간 호에서 배를 타던 중 사고로 죽었다고 하니, 어찌 됐든 일반적인 블랙메틀 밴드와는 많이 달리 보이는 부분이 있다.

통상 Anubi는 포크 블랙메틀 정도로 불리는 밴드이지만, 정작 이 앨범(영어로 앨범명을 풀면 "When Death Shalt Close the Eyes of the Full Moon" 이라고 한다)은 그 이상의 요소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에스닉한 요소들을 꽤나 많이, 복잡한 양상으로 묶어내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여러 장르를 묶어내면서 사실 어떤 장르의 컨벤션 자체를 찾아내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는, Anubi의 음악에서는 블랙메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buzz-saw 리프나 블래스트비트를 찾아보기 어렵다. 리프 자체에 좀 더 강한 존재감을 부여하면서 에코 이펙트를 이용한 '분위기' 를 만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통상 블랙메틀에서의 단순하고 거친 리프가 일종의 '사이키델릭' 효과를 낸다고 한다면 기타 리프의 사이키델릭을 다른 파트에 일정 부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블랙메틀 밴드 치고는 꽤나 데스메틀의 스타일에 가까운 보컬이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아코디온,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블랙메틀 밴드 치고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이 앨범은 1997년에 나왔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을 블랙메틀 밴드라고는 하지만, 사실(몇몇 곡들을 제외한다면) 어디까지나 기타 리프가 중심이 되고, 거친 보컬을 보여준다는 점 외에는 블랙메틀이라고 하기 어려운 음악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메틀과는 거리가 먼 인트로성 곡인 'Savo Kelyje' 같은 곡이 단적인 예일 것인데, 프리재즈풍의 색소폰 연주와 챈트, 오르간 연주에 병치되는 포크적 요소는 - Forgotten Silence 같은 밴드처럼 '계산된' 연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 처이일 것이다 - 이 밴드가 어느 장르에 연결시키기 상당히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Gyvenimo Kritima Dovanosim Kranlkiui' 같이 거의 서던 록의 스타일까지 보여주는 연주 - 어찌 들으면 Finntroll 같기도 - 는 이들이 97년 당시 '흔해빠졌던' 노르웨이 블랙메틀의 전통에서 엇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파트 하나하나의 연주를  찾아 듣는 재미를 가질 수 있는 보기 드문 '블랙메틀(의 영향을 받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블랙메틀이나 포크 메틀의 팬들이 좋아할 만한 앨범은 아니고, 오히려 좀 '괴악한' 스타일의 메틀 앨범을 찾는 이들에게 더 알맞을 것이다. 물론 앨범 커버나 멤버들이 영락없는 블랙메틀 스타일인지라 이들이 딱히 주목을 받았던 적은 없는 듯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당시 유럽 메틀 밴드들 중 가장 '아방가르드' 한 스타일을 추구한 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더욱이 그 다시 아방가르드하다고 불린 밴드들 부류에서 포크적인 요소를 추구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리투아니아 밴드가 굳이 이집트풍 요소를 음악에 차용한 것이 특이하기도 하지만, 그런 점을 떠나더라도 충분히 눈에 띄고, 만족스러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