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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Writings

Critic for Burzum's Ambient

초기의 거친 음악을 연주했던 Burzum이 본격적으로 '앰비언트' 의 색깔을 비치기 시작했던 것은 아무래도 1994년의 "Hvis Lyset Tar Oss" 앨범부터일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은 블랙메틀 앨범이지만, 앨범에는 아마도 Burzum 최초의 앰비언트 트랙일 'Tomhet' 이 수록되어 있었다. 1994년에 나왔다는 것 때문에 사실 음악을 들어 보면 전혀 상관없는 스타일이지만 바로 이 '앰비언트' 는 같은 해에 나왔던 Aphex Twin의 "Ambient Works Volume II" 와 은근히 비교되었던 것을 생각보다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둘 다 앰비언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점만큼은 동일하겠지만, Aphex Twin과 Burzum이라는 두 이름 사이에 놓인 간극은 '다들 아시다시피' 메워지기가 쉽지 않다(심지어 커버는 Aphex Twin이 더 괴악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Tomhet' 이 서양 앰비언트 뮤직의 전통에서 비껴나가 있다고 볼 만한 건 아니었다. 사실, 'Tomhet' 은 1970년대 크라우트록 거물들의 앰비언트, 즉, Tangerine Dream이나 Klaus Schluze 같은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Filosofem" 에서 25분짜리 앰비언트를 수록하는 시도가 있었던 뒤에, Burzum은 잘 알려진 바대로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던)두 장의 앰비언트 앨범을 발표했다.

하필 이 두 장의 앨범이 Euronymous 사후에 발표되었고, 생전에(친하던 시절에) Varg의 음악적 '멘토' 를 자처했던 Euronymous가 크라우트록 씬의 전자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라면야 Euronymous가 베를린에 갈 기회가 있었을 때 (이제는 고인이 된)Conrad Schnitzler를 찾아가 Mayhem의 앨범에 실을 곡을 달라고 했던 것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Conrad는 정말 곡을 주었고, 바로 그게 "Deathcrush" 에 실렸던 'Silverster Anfang' 이었다. 이 자의식 강하던 뮤지션들이 앨범을 만들면서 정작 그 인트로를 다른 뮤지션의 곡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Burzum의 '앰비언트' 작곡은 사실은 Euronymous, 더 올라가면 크라우트록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렇지만 사실 Burzum의 '앰비언트' 시기는 개인적으로는 Burzum 음악의 가장 취약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앰비언트에서 다시 벗어난 지금이 그렇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내가 Klaus Schulze와 Tangerine Dream의 음악 중 많은 부분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자의식 강하기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뮤지션인 Varg가 자신의 색깔이 아닌, 오로지 남의 색깔을 비추어 내는 음악을 했던 것이 그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Filosofem" 까지의 Burzum은 간혹 앰비언트로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블랙메틀 밴드였고, Burzum의 블랙메틀이 매우 독창적이었으며 후대에 어떠한 '장르' 를 형성한 스타일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Burzum의 그 싸구려 키보드로 연주했을 앰비언트(앨범이 들려주는 사운드의 퀄리티도 그렇거니와, 감옥에서 앨범을 만들면서 얼마나 좋은 장비를 쓰기를 기대할 것인가?)가 보여줬을 영향력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미 80년대에 등장한 많은 유럽의 전자음악 거물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전자음악을 얘기하면서 Varg Vikernes를 얘기하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명확한 컨셉트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운드의 '발명' 내지는 '실험' 에 중점을 두었던 크라우트록 뮤지션들에 비해 Varg의 음악에서는 사운드가 가져오는 명징한 '분위기' 는 있을지언정 새로운 음향의 이용 등의 측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잘 알려져 있듯이 Varg가 갑자기 블랙메틀에서 앰비언트로 음악을 전환한 동기는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다 - 블랙메틀 또한 일종의 록 음악으로서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Varg가 '블랙메틀' 을 그만둔 동기는 있었어도 사실 '앰비언트' 를 선택한 동기는 별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Burzum이 그 전의 앨범에서 앰비언트적 요소를 조금씩 보여 준 적이 있었어도, 이후의 본격 앰비언트 앨범이 이전의 앨범들과 음악적 연속성을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억지스러운 표현이겠지만, Varg에 난자당해 죽었던 Euronymous는 정작 은연중에 자신이 Varg에 미쳤던 음악적 영향력을 통해서 나름의 복수를 행했던 것이다.

post script :
어느 친구가 부탁했던 Burzum의 "Daudi Baldrs" 를 위한 글이었는데 쓰다 보니 결국은 또 까는 글이 되어 버렸다. 두서 없더라도 이해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