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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Nazi UFO Commander - Radiant Entropie

[Old Europa Cafe, 2008]

Old Europa Cafe도 은근슬쩍 25년이나 된 레이블인지라, (물론 연수에 비하면 나온 앨범은 결코 많지 않다) 이런 저런 괴팍한 친구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들만큼이나 괴이한 이들은 사실 보기 힘들다. 이 밴드의 이름은 2차대전 당시 제3제국이 발전된 기술력의 원반 모양의 비행체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일종의 음모론에서 나온 것이라는데, 워낙에 '세계의 역사상의 불가사의' 식의 저술이나 웹사이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얘기이니 낯설 건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음악에 써먹은 것도 이들이 처음은 아니다. 이를 테면 Allerseelen 같은 이들이 있겠는데, 그렇더라도 내놓고 이런 밴드 네임을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접한 것은 이 앨범이 처음이지만, 이전에 이미 "Strange Monasteries" 라는 앨범을 냈었고, David E. Williams의 트리뷰트 앨범과 Old Europa Cafe의 100번째 앨범 릴리즈 기념 7cd 세트에도 참여했다고 한다.(후자는 갖고 있는데 나는 왜 이들을 모르는 걸까)

43분 가량의 이 앨범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일련의 보컬 샘플링, 구체적인 서사를 진행하는 나레이션이 주가 된다. (앨범 부클렛이 친절하게 모두 적어 두고 있는 점도 보기 드문 일이다)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다양한 사운드들이 콜라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곡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더스트리얼 느낌 강한 앰비언트 사운드, 가 그래도 주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Fylfot' 같이 드론 둠의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으나) 앨범의 컨셉트에 맞춘 NASA의 달 착륙이나, DNA같은 주제를 주로 다루나, 'Ahnenerbe LD' 같은 곡에서는 주술적 챈트가 나오는 등 일관된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그 구성은 나름 다채로운 편이다.(찾아본 바로는, 티벳의 승려들의 챈트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밴드 스스로는 자신들의 음악을 'Martial Ambient' 이라고 생각한다는데, 일반적인 martial industrial과는 판이하게 틀리다. 그나마 거의 앨범의 4분의 1을 혼자서 차지하는 'Declaration' 이 상대적으로 강한 비트를 들려주고 있어, 앨범에서는 가장 martial에 가까운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일관된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이들의 음악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일관된 분위기는 다양한 사운드 샘플링의 이용으로 중구난방이 되어 버릴 뻔한 각 트랙 간의 개연성을 확보한다. Old Europa Cafe의 많은 뮤지션들이 그렇기도 하고, 이런 식의 콜라주 방식을 취하는 이들의 경우 흔히 거의 노이즈에 흡사한 음악을 들려주는 경우가 빈번한 편인데(여기서 노이즈는, Merzbow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들과 같이 서사가 명확한(부클렛이 스토리가 다 적혀 있음은 이미 언급했다) 이들의 경우는, 그 서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음악이 사실상 부차적인 지위를 자처하거나, 흐름에 있어 서로 조화로운 경우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음악은 '부차적' 일 정도로 소심한 스타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는, 거의 Diamanda Galas가 생각날 정도의 광적인 보컬(물론 스타일은 틀리다)이 등장하는 'Conda' 가 있다. 이 앨범의 가장 훌륭한 점은 우연적인 듯하나 계산적으로 배치된 콜라주가 서사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아쉬워진 점은 그러한 서사의 한계가 처음부터 이들이 시도하는 사운드의 한계를 정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니힐리스틱한 사운드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위 '인더스트리얼' 또는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미덕이 될 법한 이색적이거나 강렬한 비트는 많이 돋보이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비트가 강한 'Declaration' 은, 어느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지만 그 드라마틱함은 곡의 구성에서 기인하는 바 큰지라, 이들의 음악이 강력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martial이라는 표현이 붙는 음악의 최대 특징은 강력한 퍼커션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위에서도 말한 이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음악에 'martial' 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그리 마뜩치 않지만, 이들이 'ambient' 에 방점을 찍는다면야 이해 못 할 것까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괴이한 심볼들과 오컬티즘 및 SF 등을 적절히 섞어 기묘하게 웃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43분의 러닝타임 동안에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어디 가서 쥘 베르느가 21세기에 마약(또는 알콜)중독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떠벌이로 환생해서 떠드는 듯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괴팍한 앰비언트 사운드를 구하겠는가? 앨범은 각종 클리셰와 레퍼런스들로 자욱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개인에게 맡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