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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Skitliv - Skandinavisk Misantropi

[Season of Mist, 2009]

노르웨이 블랙메틀 씬의 수 많은 '슈퍼 밴드'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기는 하나, 이들도 그 반열에 끼워넣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밴드를 주도하는 것은 Mayhem의 Maniac과, Shining의 Kvarforth가 있고, 그 이전에는 Arcturus의 Tore 등도 참여했었다. 아마도 2008년의 EP 앨범이었던 "Amfetamin" 때가 멤버는 절정이었을 것이다. 이 때는 아예 Current 93이 통째로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었다. 사실, "Amfetamin" 이 듣기 좋았다는 말은 못 하겠다. 앨범은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그 동안 Maniac이 참여했던 어떤 밴드의 다른 앨범들보다도 듣기 불편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정규 앨범 하나 내지 않은 밴드가 2곡의 신곡, 6곡의 라이브로 앨범을 꾸렸다는 것도 좋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 멤버로 어쨌거나 '둠 메틀' 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형적인 모습의 둠 메틀은 아니지만 - 그래서 이들을 어쨌든 블랙메틀 밴드라 하는 이들도 꽤 되는 듯하다 - , 이 멤버로 '발광하는' 무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꽤 의외인 일이다)

그러다가 금년에 밴드의 첫 풀-렝쓰 앨범이 나왔다. 처음부터 5분이 넘어가는 인트로를 배치해 둔 것 자체가 여전한 밴드의 불친절함을 보여 주는데, (무지하게 길게 들린다)뒤에 나오는 곡들도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약간은 괴이한 기타 리프와 느릿느릿한 드러밍에 어느 정도의 노이즈 및 피드백이 더해진 음악인데, 소위 'depressive' 블랙 메틀을 더욱 느리고 둠적으로 만들어낸 음악이라 해도 많이 틀리진 않을 듯싶다. 그러다가, 앨범에 좀 다른 모습을 부여하는 것은 아무래도 앨범에 참여한 보컬리스트들의 역량일 것이다. 'Skandinavisk Misantropi' 부터의 Maniac의 존재감은 물론이고, 앨범에 참여한 Gaahl이나 Atilla Csihar, David Tibet의 목소리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나 'Towards the Shore of Loss' 가 가장 좋은 예라 하겠는데, 이 곡은 앨범 내에서도 좀 더 빠른 편이고 블랙메틀적이라는 점에서, 멤버들의 본류를 대략 짐작케 한다. 특히나 'Densetsu' 의 경우는 완전히 블랙메틀 트랙이다.

뮤지션들의 면면이 그래서인지, 앨범의 음악은 보통의 둠 메틀 앨범보다는 더 니힐리스틱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I am anti-matter' 식의 가사는 블랙메틀에서 보기 쉬운 편이 아니다)바꿔서 얘기하면 (멜로디가 없는 앨범은 아니지만) 멜로딕한 면에 의존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오히려 중간 중간에 '클래식 둠' 에 가까운 기타 리프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Maniac과 Kvarforth의 성향상 블랙메틀 리프와 적당하게 섞여서 보여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 중간을 약간은 위태롭게 끌어내고 있는 모양새인데, 다행히 멤버들의 전작의 실패의 경험 탓인지, 오랜 음악 경력 탓인지 그게 그리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블랙메틀의 면모가 둠 메틀을 덮어버리고 있지 않으니, 그것만으로 앨범은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Maniac의 보컬에 힘입은 바 크다.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악기'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앨범은 둠 메틀 앨범이지만 일반적인 퓨너럴 둠 식의 방향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인 둠-데스 밴드들과는 구별되게도)괴팍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노이즈와 피드백의 사용부터가 '노스탤지어' 식의 분위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감정 잡으려다가 그 노이즈에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다) 재미있는 또 다른 점은 그러면서도 사이키델리아에도 밴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덕분에 앨범은 분명히 구별되는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물론 매우 듣기 피곤한 스타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Maniac의 보컬 스타일 자체가 (그가 블랙메틀 보컬리스트임을 감안하더라도)듣기 녹녹한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이 앨범도, 되게 변태적인 앨범이다. 몰아치지 않으면서도 난폭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