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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Paysage d'Hiver - Die Festung

[Kunsthall Produktionen, 1999]

이 블로그에다 별로 볼 것 없는 글들을 올리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물론, 포스팅에 관련해서다. 사실 별로 들은 적은 없는데, 오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체 '서사' 를 무슨 의도로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건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단어는 '내러티브(narrative)' 에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어울릴 만한 앨범은 아마도 컨셉트 앨범이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명확한 텍스트를 가진 앨범에 한정될 것이다. 물론 나는 거기에 한정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앨범에 어떠한 테마가 있다면, 거기에 사운드나 가사 등, 여러 부분들이 이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집중적인가 하는 의미였는데, 그런 의미라면 차라리 '총체성' 정도가 더 좋은 단어였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말은 또 다르게 읽힐 여지가 많아 보인다.(앨범 전체가 다양성과 무관하게 '일관된' 스타일로 진행된다는 식으로) 그래서, 어쨌건 이 단어는 적확하게 사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좋은 단어를 찾지 못한 관계로 사용하는 셈이다.

이 얘기를 왜 먼저 꺼내는가 하면, 이 앨범은 노골적으로 명확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식의 '서사' 라는 면에는 보기 드물 정도로 완전히 부합하는 앨범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밴드 이름은 'Landsacpe of winter' 라는 뜻이고, 앨범 아트워크나 곡명, 음악의 분위기 등에서 지독할 정도로 일관된다. 사실, 음악적으로는 많은 Burzum 이후의 소위 블랙 앰비언트 밴드들이 그렇듯이 새로울 부분은 없을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같은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저런 아류들과는 비교 불가의 수준이다) 많은 이들이 "Daudi Baldrs" 를 언급하는데, 나는 그 앨범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블랙 메틀 뮤지션들의 앰비언트 시도가 그 앨범에서 많이 비껴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결국은 그 형식으로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밴드의 근래 음악에서는 기타 연주나 드럼머신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데모에서는 키보드만이 연주되고 있다. 그나마도 구체적인 라인은 갖추고 있지 않고, 약간의 이펙트나 루핑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아주 드문 편이다. 밴드는 그야말로 전체적인 분위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코드의 사용은 꽤나 복합적인 편이다. 변화가 심하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겹의 사운드가 두터운 텍스쳐를 만들어내는데, 데모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앨범이 개별 음들을 명확하게 잡아내고 있지 않은 덕에 분위기는 더욱 '앰비언트답다'. 변화가 심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 앨범이 'Daudi Baldrs' 를 따라가는 수많은 앰비언트 앨범과 비교되는 것은 그리 반복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드론 사운드를 의도한 듯한 부분도 있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계속 변주되면서 나타난다. 이런 저런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단일 프레이즈를 변주해 가면서 곡을 진행해 나가는 것을 사운드스케이프를 가지고 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겨울의 분위기를 의도한 것이니, 흔히 많은 밴드들이 북풍 소리 격으로 이런 저런 음향들을 끼워넣지만, 밴드는 그런 음향을 굳이 넣지 않는다. 이건 사실 더 현명한 방식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음향은 분위기를 느끼려다가도, 방금까지 듣고 있던 것이 음악이었음을 청자에게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이 맞지만, 이런 류의 앰비언트가 의도하는 바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틀릴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블랙메틀적 색채가 분명히 나타나는(대표적인 예로, "Paysage d'Hiver" 데모. 나는 'Welt aus Eis' 를 엄청 좋게 들었다) 다른 데모들을 더 좋아하지만, 이 앨범만큼 일관되면서, 분위기 하나만에 집중시키는 앨범은 정말 보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Burzum의 'Tomhet' 을 좋아한다면 좋아할 음악이라고 하던데, Burzum을 폄하하려고 하는 바는 아니지만(당연히, 이들의 결과물이 Burzum보다 훌륭하다면, 그건 이들이 Varg의 어깨를 밟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앨범이 그 곡보다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면, 나는 이 데모를 들은 뒤에 이 밴드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데모들을 모으고 있다. 아마 감상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post script :
1. 이 밴드는 Wintherr(Tobias Möckl)의 원맨 프로젝트이다. 여기 오는 이들은 많이들 익숙하겠지만, Darkspace의 그 사람이다.
2. 밴드의 모든 데모는 A5 디지팩 CD로 재발매되었으니,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http://www.kunsthall.ch/를 참고. 재미있는 것은 원래의 데모는 두 곡으로 되어 있지만, CD는 5곡이 수록되었다고 나온다. 물론 음악은 똑같다.
3. Kunsthall Produktionen은 당연히 자주 레이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