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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Cirith Ungol - Frost and Fire

[Liquid Flame, 1980/Metal Blade, 1999 reissued]

Cirith Ungol 정도면 사실 헤비메틀의 '클래식' 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런 얘기가 그리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Kerrang! 지의 어느 정신나간 필자는 이 앨범을 최악의 헤비메틀 앨범 중 하나로 꼽기도 했는데, 사람에 대한 평가는 물론 조심스러운 것이지만, 이건 정신나간 일이 맞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헤비메틀이 Black Sabbath 이후로 80년대에 이르기까지(적어도, 스래쉬메틀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는)는, 아무래도 더 빨라지거나 더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방향으로 나타났지, 헤비함을 강조한 밴드는 그에 비해서는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Cirith Ungol은 꽤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아직 블루지함을 완전히 걷어내지 않은 리프에 적당히 느릿느릿한 템포는 밴드가 인기를 끌기 더 어렵게 했을 것이고, 아마도 Tim Baker의 독특한 목소리 - 어떻게 들으면 AC/DC 같기도 한 - 도 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Ozzy도 독특한 목소리의 보컬리스트였음을 생각하면, Tim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억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들은 적어도 그 정도의 인기 밴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컬트의 반열에 오르는 데는 충분한 밴드였다. 사실 Iron Maiden과 Judas Priest가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밴드는 그들보다 더 헤비한 음악을 했고, 특유의 둔중한 분위기에 있어서는 Celtic Frost를 예기하는 사운드를 들려준 밴드일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Celtic Frost의 밴드 이름 자체가 이 앨범의 제목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Cirith Ungol이 Celtic Frost의 서포트 밴드를 하기도 했었다는 걸 생각하면 기묘한 인연이다). 물론 그 점이 두드러지는 것은 다음 앨범인 "King of the Dead" 이겠지만, 아무래도 하드 록의 면모를 아직 버리지 못한 1980년의 시점에서인지라, 데뷔작인 이 앨범이 좀 더 락큰롤적인 맛이 있다. 바꿔 얘기하면 뒤의 작품들이 이 앨범보다는 좀 더 프로그레시브하다. Michael Flint의 베이스가 은근히 훵키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그런 특징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앨범을 그런 맛에 듣기 시작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적어도 이 앨범의 시점에서 그 점은 밴드의 개성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가장 그런 면모를 강하게 보여 주는 것은 그루브한 느낌을 주는 브레이크에 '건강한' 느낌의 코러스까지 등장하는 'Edge of a Knife' 일 것이다.  앨범의 중반부 이후가 '둠' 이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로 좀 더 느리지만 극적인 패시지를 끌고 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꽤 재미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미국 출신이지만, 이런 곡의 구성은 Dark Quarterer나 Adramelch 같은 밴드를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이 좀 더 느리고 동네도 틀리지만 말이다.

사실 NWOBHM의 시대에서 그런 음악이 인기를 끌기는 확실히 어려웠을 듯싶다. 말하자면 밴드는 동시대의 여느 밴드보다도 헤비하면서, 동시에 비교되기 어려운 음악을 했다. 밴드가 영국도 아닌, LA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 이들의 음악은 주변의 동료들과도 매우 틀린 것이었다. 이후의 앨범들에서 '둠' 적인 색채가 강해진다는 것이 아무래도 그 모습의 일환일 것인데, 그렇지만 그 앨범들의 분위기는 이 앨범에서도 분명히 남아 있다. 그렇게 치면 밴드의 음악은 이후 Celtic Frost의 음악과 이전 시대의 상대적으로 프로그레시브했던 NWOBHM 밴드의 중간 정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톨킨에게서 주제를 따 온 것이 이들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들처럼 오늘날의 '용 잡으러 떠나는' 식의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한 밴드가 이전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Frost and Fire' 의 도입부의 저돌적인 기타 리프는 그런 모습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의외일 정도로)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 밴드의 영향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받은 밴드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밴드는 이 앨범으로 80년대 헤비메틀의 모습의 한 전형을 만들었던 것이다.

일종의 '미싱 링크(missing link)' 여서인지 앨범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나름 다채로운 편이다. 가장 영국적인 리프를 가지고 있는 'What Does It Takes' 는 동시에 80년대풍의 신서사이저 연주를 보여주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밴드를 좀 더 헤비한 사운드의 Nazareth라고 하던 사람들이 아마 이를 의도했을지도), 'I'm Alive' 가 훗날 둠 사운드를 예기하면서도 70년대 후반 헤비메틀의 모양새를 앨범에서는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고, 비장한 피날레(전사의 죽음의 내용)을 의도하는 인스트루멘틀 'Maybe That's Why' 등의 수록곡들은 덕분에 각자의 존재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사운드의 폭도 보통의 헤비메틀 앨범에 비해서는 넓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밴드의 이후의 모습들과 80년대의 후배 밴드들은 자신들이 이 앨범의 음악을 간과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앨범의 가치는 그런 의미에서,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post script :
밴드의 이름은 '반지의 제왕' 에 나오는(영화에서는 3편), 모르도르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거대한 거미 쉴롭이 살고 있던 길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