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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Leprous - Tall Poppy Syndrome

[Sensory, 2009]

Ihsahn은 확실히 대단한 뮤지션이었다. Emperor에서 활동하던 시절은 물론이고, 그 외의 프로젝트들이나 솔로 활동들도 (사실 호오는 좀 갈릴 수도 있겠으나)꽤나 묵직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농담삼아 복지의 꿀을 빨아먹고 사는 북유럽 사람들(물론, 백인들)은 음악을 해도 뭔가 비범하게 나온다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먹고 살 걱정을 덜 하는 부분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Ihsahn과 같은 선배들이 데리고 다니면서 뿌리는 영향 같은 것도 무시할 수는 없겠구나 싶다. 사실 Sensory 레코드에서 앨범이 나왔으니 분명 프로그레시브 메틀 밴드일 이들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물론 노르웨이 출신이라는 것도 있고, 멤버 전원이 Ihsahn의 투어 멤버였거나 앨범에 참여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드를 연주하는 Einar Solberg는 Emperor의 라이브 키보디스트이다. "Live Inferno" 의 세션 키보디스트가 누구였는지를 상기할 것. 예전에 Pain of Salvation이 어린 나이에 밴드 경연대회 같은 데서 우승을 했다더라 식으로 회자된 적이 있었는데, 이들도 'Norwegian Rock Championship' 에서 두 번이나 결선까지 갔다고 한다.(여기까지만 얘기하는 거 보니 우승은 못 했는지도. 하긴 우승했던 PoS가 괴물들이었던 거다) 아마 자부심 넘치는 아직은 혈기왕성한 친구들일 것이다. 사실 "Tall Poppy Syndrome" 라는 앨범 이름부터가 좀 그렇지 않은가.

경력 때문인지 이들의 음악은 많은 스타일이 혼재하고 있다. 사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비슷한 밴드를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누구의 음악을 들었을지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라면 그렇게 생각나는 밴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물론 Emperor와 Ihsahn도 있고, Opeth나 Arcturus, Pink Floyd(나 Porcupine Tree), King Crimson 등의 분위기도 느껴지는 바가 있다. Einar의 보컬 스타일이 아주 다양하다는 점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인데, 그로울링부터 독특한 음색의 클린 보컬(개인적으로는 Sonata Artica 생각이 좀 나는데), 코랄풍의 읊조리는 목소리도 등장한다. 물론 변화가 심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밴드들이야 언제부턴가 'chaotic metal' 식의 용어가 사용되면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런 아이템들로 어떤 패시지를 만들어내는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런 스타일에서 그걸 해낼 수 있는 밴드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그런 면에서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들의 음악은 사실 많은 밴드들이 하는 것처럼 복잡한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테크닉의 향연에 그리 치중하는 편은 아닐 것이다(물론 프로그레시브 메틀이란 것을 감안해서 하는 얘기다. 분명 테크니컬하긴 하다). 그런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명의 기타리스트의 솔로잉일 것이다. 꽤나 복잡한 리듬이지만, 이들의 솔로잉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느린 편이고, 정교하게 짜여진 박자와는 조금씩 어긋나는 편이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에서 베토벤이 들린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베토벤 후기의 현악 4중주 작품들을 생각해 볼 것)덕분에 복잡한 리듬 섹션에 비해서 빈곤해질 수 있을 사운드를 메우는 것은 Einar의 키보드이다. 사실 Halvor Strand의 베이스 연주가 나쁘지는 않지만, 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Einar가 덧칠하는 키보드 연주이다. 몰아치는 연주보다는 여러 트랙을 이용하여 두텁게 쌓여진 기타 연주도 분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드라마틱한 구조와 심한 변박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들은 여타 프로그레시브 메틀보다는 일관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앨범이 신기한 지점은 명확하다. 많은 스타일이 혼재하고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일관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전형에 가장 가까울 'Not Even a Name' 같은 곡도 있지만, 이 앨범에는 앨범 군데군데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재즈적인 어프로치와, 'Dare You' 같은 곡에서 나타나는 사이키델릭 사운드, 'Phantom Pain' 에서 나타나는 (Dimmu Borgir 스타일의)블랙메틀, 'Fate' 에서 나타나는 Ihsahn의 솔로작들의 분위기들도 존재한다. 앨범의 피날레인 'White' 에서는 예전 Hawkwind가 가장 격렬하던 시절에 써먹던 것과 비슷하게도 느껴지는 패시지에, 역시 격렬한 해먼드 오르간과 멜로트론 연주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이 다양한 아이템들로 어떻게 보면 만화경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데, 다만 그 이야기에 묘하게 느껴지는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꼭 좋은 얘기만은 아니다. 덕분에 그렇게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곡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은근히 반복적이고, 개별 곡들은 혼자서는 별 힘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앨범이 컨셉트 앨범과 같은 식의 구성이 되기에는 내용은 꽤 빈약한 편이다(가사 정말 못 쓴다는 얘기다. 영어 못하는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건 좀 심각할 일이다). 다만 그 일관된 이미지만큼은 분명히 인상적인 것이고, 그 이미지는 꽤 신기한 지점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매우 흥미로운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 script :
Jonas Kjellgren이 레코딩을 도와 주었다. 물론 Carnal Forge, Centinex, Scar Symmetry(여기도 있다는 게 좀 깨지만)의 그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