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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Ô Paradis - El Juego Negro

[Autre Que, 2005]

이들을 처음 알게 된 건 지금은 업데이트를 멈춘 웹진인 Funprox에서였는데, 그 리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밴드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는, 이 EP 앨범을 낸 Autre Que 레이블이 나름 이름 있던 프랑스 네오포크 웹진이었던 Heimdallr의 운영진 중 둘이 합심해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건 사실 드문 경우는 아닌데, 어쨌든 이런 건 나름대로 음악을 들어 온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해 봤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각별한' 레이블의 첫 작품은 아주 신중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뭐, 이 정도의 생각이 당시로서는 알지도 못하던 이 카탈로니아 출신 뮤지션 - 실질적으로 Ô Paradis는 Demian Recio의 프로젝트이다 - 앨범을(그것도 EP를) 구하게 한 이유였다. (물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Ô Paradis는 워낙에 다작의 뮤지션인지라, 여기저기서 앨범이 나오는 편이라는 걸 물론 당시에는 몰랐다)

Novy Svet과 스플릿 앨범을 냈던 만큼, 이 EP에는 Jeuergen Weber가 게스트로 참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비중이 높은지라(Weber는 절반 - 그래봐야 두 곡이지만 - 에서 보컬을 담당한다) 이 앨범에서 Ô Paradis는 듀오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법하다. 그 결과물이 이전의 Ô Paradis와 비교해 독특하게 다가온다는 것은 A면의 'Black Wings' - 앨범 커버를 보시라 - 에서부터 드러난다. 원래 Ô Paradis는 다크 포크에 록의 요소를 괴팍하게 결합한 듯한 음악을 들려주긴 했는데, 이 앨범에서 그 스타일은 더 괴팍하게 느껴진다. Jeuergen Weber의 허스키한 보컬이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주는 것도 같은데, Weber의 목소리가 상당히 Tom Waits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에서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한다. 여기 오시는 분들 중 Tom Waits의 "Swordfishtrombone" 앨범을 들어 본 경우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는데, 색깔은 분명히 틀리지만 괴팍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다만 어느 편이 더 다양한 색깔을 보이는가는 아무래도 Ô Paradis 쪽이 될 것 같다. 괴팍한 만큼 장르의 컨벤션을 별로 따르고 있지 않지만, 더 다양한 장르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면을 십분 이용한 특색일 것이다.

그래서 이 EP에는 Ô Paradis가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모습도 상당히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Iggy Pop과 David Bowie의 콜라보인 'Funtime' 의 커버인데, 덕분에 Demian이 여태까지 연주한 어느 곡보다도 가장 팝적인 곡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리듬의 면에서는 Iggy Pop보다는 확실히 변화가 심하고, 역시 상당히 자유로운 전개를 보이는 오르간 연주가 이들의 음악을 구분짓기는 하나, 확실히 여느 때보다 '건전한' 느낌의 코러스는 앨범을 꽤 가볍게 마무리하는 편이다(원곡의 느낌상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반면 같은 B면의 수록곡인 'El que no conoce Dios' 는 반쯤은 나레이션에 가까운 보컬에, 앨범에서는 가장 어두운 분위기를 보이는 발라드이다. Nick Cave와는 확실히 다르지만, 이 쯤 되면 'murder ballads' 라는 말이 어울리는 분위기라고도 생각하는데, 가사는 의외로 담담한 자기 고백에 가까워서 조금 의외이기도 한 곡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발라드도 구성에 있어서는 나름 트리키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는 이 곡에 등장하는 Jeuergen의 스패니쉬 기타 연주일 것이다. 가장 포크의 전형에 가까운 곡은 '30 Monedas' 인데, 달리 말한다면 가장 Ô Paradis의 원래 모습에 가까운 곡이기도 하다. 퍼커션과 드럼, 팀파니에 일렉트로닉스를 이용한 업템포가 물론 꽤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인다만 - 포크라고 했지만, 사실 탱고에 가까운 부분도 나온다. martial풍의 부분도 있음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편이다 - Demian에게는 가장 익숙한 작풍이어서 그런지, 가장 부드러운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이 곡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이 4곡의 EP는 Ô Paradis의 많은 앨범들 중에서 가장 유니크한 편이고, Ô Paradis와 Novy Svet가 스플릿 앨범들에서 보여 주는 면모들과도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아무래도 Weber의 보컬 때문이겠지만, 나는 이 앨범을 듣고 Tom Waits가 네오포크/인더스트리얼을 하면 이렇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Tom Waits도 긴 커리어 동안 매우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던 뮤지션이었다. 다만 Tom과 달리 이들은 짧은 EP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차이는 있겠다. 이후 Ô Paradis의 앨범이 급격한 방향의 변화를 겪지는 않았지만, Demian이 생각보다 다양한 스타일을 뒤트는 데에 솜씨가 있음을 가르쳐 준, Ô Paradis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흥미로운 것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의미에서도 장점은 하나 있는데, Ô Paradis의 앨범 중에서 '일반인에게도' (뭐 이 앨범을 사서 듣는 나도 일반인이기는 한데)가장 무리없이 다가갈 만한 앨범은 이것일 것이다. 커버 그림은 저렇지만 실제로 보면 아주 예쁘게 뽑힌 7인치 LP이니 컬렉션으로도 만족스러운 편.

post script :
222장 한정이었는데, 아직도 discogs 같은 곳에서는 저렴하게 팔고 있다. 역시 스페인 친구라 인기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