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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Tartar Lamb - Sixty Metonymies

[Self-financed, 2007]

Tartar Lamb는 Toby Driver와, Kayo Dot의 멤버인 Mia Matsumiya가 주축이 된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앨범 제목인 "Sixty Metonymies" 의 'metonymy' 를 환유, 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미 이 앨범의 방향의 상당한 부분을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Lacan을 좋아하지 않지만)Lacan 식으로 환유를 얘기할 때, 대충 이는 인접성을 갖는 기표들의 연쇄일 것이다. 이미 "Choirs of the Eye" 이후에, Driver는 그의 솔로 앨범이나("Library Loft") Kayo Dot의 두 번째 앨범인 "Dowsing Anemine with Copper Tongue" 에서 명확한 구성을 배제하는 작풍을 보여준 바 있었는데, 사실 그 앨범들의 개별 곡들이 그럼에도 일정한 파고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극적인 마무리를 "Choirs of the Eye" 에서 제거한 스타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면에서 생각한다면 이전의 앨범들이 '환유' 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음악 이전에, 어떠한 아이디어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앨범의 제목은 아주 야심찬 기획이 된다. 적어도 "Choirs of the Eye" 이후에 변화하기 시작했던 Toby Driver의 음악적 기획을 정리한다는 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예상은 많이 틀리지는 않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Mia의 바이올린이 곡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고딕 메틀 식의 진행이라는 것이 아니라, 앨범이 기본이 되는 프레이즈를 바이올린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Toby의 기타 연주는 그에 비해서는 주변적이다. 미묘하게 변주된 프레이즈나 리버브를 이용한 텍스처는 Toby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동일한 특징이었지만, 이 앨범에서는 확실히 중심에서는 비껴나 있다. 이들의 연주에 액센트를 주는 것은 Andrew Greenwald의 퍼커션과 Tim Byrnes의 호른이다. 밴드의 편성에서도 짐작되는 부분이지만 그런 액센트를 곡을 타이트하게 가져감으로써 만드는 것은 아니다. "Dowsing..." 같은 앨범이 앰비언트 같은 사운드라는 평을 많이 들었던 것을 생각해 보자. 이 앨범도 그런 의미에서는 앰비언트풍이다. 사실 이 앨범의 기타-바이올린의 연주는 서로의 연주를 변주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덕분에 프레이즈는 상당히 미니멀한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것은 11분 동안이나 그런 반복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Incensing the Malediction Is a Lamb' 일 것이다. 물론 고조된 분위기는 Toby Driver의 이전의 앨범과는 달리, 해소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많은 경우)서사를 강조하는 일련의 '프로그레시브' 한 작품들과는, 서사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한 대척점에 있다.

그렇지만 Toby Driver의 '변주' 위주의 연주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매우 계산적인 코드 프레이징을 이용한 변주는 '비슷한' 연주이지만 매우 다르게 들리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Mia Matsumiya의 연주도 그런 면은 분명하지만, 상대적으로 Mia의 바이올린이 앨범의 중심에서 - 절제되어 있지만 - 비르투오시티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덕에(이는 'A Lamb in Hand's Worth Two in the Ewe' 초반의 피치카토 같은 부분에서 가장 명확하다) 다양한 사운드의 구현은 Toby의 기타의 역할이 된다. 사실 Toby가 '명확하다' 고 할 만한 프레이즈를 연주하는 부분은 'Trumpet Twine the Lamb Unkyne' 의 초반부 정도가 전부일 것인데 - 덕분에 앨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스케일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기타/바이올린/호른/그리고 약간의 피아노가 서로를 변주하면서 괴팍하게 진행되는 통에 그런 면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미니멀하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도 그 사이에 일종의 이정표를 잡아 주는 것은 바이올린과, 중간 중간 터져 나오는 - Martial 음악에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생각하는데 - 스네어 소리이다. 거의 플룻에 가까울 정도로 날카로워지면서 복잡한 조성의 변화를 보여주는 바이올린이 'The Lamb, the Ma'am, and the Holy Shim-sham' 의 중심이 되어 두터운 텍스처를 구축하면서 앨범을 마무리하는 것까지 이런 기조에 일관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Toby Driver의 - Maudlin of the Well 이후의 - 앨범이 다 그렇듯이 처음에 상당히 피곤하게 다가오는 '앰비언트풍의 비-앰비언트 음악'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Toby Driver가 나름의 미니멀리즘을 더욱 복잡하게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공간감이라기보다는, 복잡하게 계산된 파트들의 변주들의 연쇄를 통해, 그 중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에서 파생되는 서사를 미묘하게 지워 나간다는 느낌인데, Toby는 인터뷰 등에서 이젠 록/메틀의 일반적인 컨벤션을 따르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그가 자신이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록/메틀보다는 모더니즘의 기획을 아직 버리지 못했던 20세기 초반의 현대음악들을 즐기는 이들에게 더욱 알맞을 법한 음악인데, 그런 경우는 아니더라도, 이 앨범은 최소한 몇 번을 반복해서 들은 이후에는 그 만한 보람을 주는 앨범이다. 그렇게 치면 '듣지 않은 이들에게' 음악을 설명하는 식의 이 글은 그리 큰 효과는 없을 것인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몇 번' 을 들은 뒤에는, 이 앨범을 아주 좋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도 사 놓고 대여섯 번을 듣게 되는 데 거의 2년은 걸린 거 같은데, 2년 이상이 지난 지금 감동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서사를 지웠다면야 이 음악은 명확한 사운드보다는 그로서 전하는 이미지로 승부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은데(이 앨범의 제목 자체가 그걸 의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치면 이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의도에 충실했던 것이다.

post script :
이 앨범을 의외로 'neoclassical' 식으로 설명하는 곳들이 많은데, 그 네오클래식을 '현대음악' 식으로 해석한다면야 맞는 얘기다. 저런 멘트에 낚이지는 말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