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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Univers Zero - Implosion

[Cuneiform, 2004]

서정을 굳이 피한 적이야 없지만(물론 그것도 내 생각일 뿐이다) 그래도 Univers Zero가 서정에 어울리는 밴드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2004년에 나온 이 앨범을 구한 건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였는데, 그렇게 치면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던 셈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이들의 팬이라고 자처하고 다니는 마당에 어쨌든 좀 아쉬운 일이기는 하다. 어쨌든 이미 이 앨범에 대한 세평은 잘 알려져 있다. 적어도 "The Hard Quest" 부터는 밴드는 확실히 이전보다는 다가가기 용이한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 "Heresie" 에서의 감히 범인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괴팍한 음악을 생각하면 참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굳이 "The Hard Quest" 를 얘기했지만, "Heresie" 이후 Univers Zero가 조금씩 밝아지는 면 없지 않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들어보지 않더라도, 이 앨범이 밴드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캐주얼한 작품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쉽게 할 이 예상은 그리고 꽤 정확하다. 앨범을 사실상 시작하는 'Falling Rain Dance' 가 아무래도 이 앨범에서의 밴드의 또 다른 변모를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된다.Igor Semenoff의 바이올린과 Michel Berckmans의 오보에가 Daniel Denis의 굴곡 심한 드러밍과 함께 곡을 주도하는데(물론 곡을 관통하는 공간감은 Univers Zero의 앨범임을 일깨워 주지만) 가벼운 분위기에 간혹은 댄서블하기도 한 박자는 Oregon 같은 퓨전 밴드들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인트로였던 'Suintement(Oozing)' 부터 인더스트리얼 사운드가 튀어나왔고, 'Partch's X-Ray' 의 기괴한 앰비언트 사운드 또한 생각하면 이 앨범은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도회적인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이 만큼이나 발생학적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장르가 있을런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의외스러운 곡은 'Rapt D'Abdullah' 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앨범에서 챔버 록의 전형에 가장 가까울 만한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바순-플루겔호른-오보에-첼로-피아노/신서사이저 정도가 기본적인 편성이지만,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마림바 연주는 Frank Zappa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앨범은 확실히 다양한 스타일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황당하게 들은 곡이었던 'Temps Neufs' 는 무려 '그루브' 한 곡이다 - 호른이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을 선사하긴 한다만,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곡의 중심에서 그루브를 만들어내고, 그런 면에서는 가장 '록적인' 곡이기도 하다. 곡명만 봐서는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팬들을 혹하게 할 법한 'Mellotronic' 은 - 멜로트론이 나오기는 하지만 - 아무래도 밴드 편성이 그렇다 보니 챔버 연주를 들을 수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퍼커션음이 곡의 흐름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이런 점은 이후의 'Bacteria' 와 'Out of Space 4' 까지고 이어지는데, 기본적으로 앞서 나온 앰비언트와 'Falling Rain Dance' 의 테마를 변주하고 있는 곡이지만, 퍼커션의 등장은 곡을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이끌고 간다. 그렇게 테마가 'First Short Dance', 'Second Short Dance' 로 이어지는데, 앞서 말한 댄서블함을 느낄 수 있는 곡이기도 하지만 퍼커션의 비중이 역시 커졌고, 분위기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변주된다(하프시코드도 등장한다). 아마도 가장 노골적인 모습은 'Variations on Mellotronic's Theme' 일 것이다. 설명은 불필요할 듯하다.

그러다 나오는 앨범의 유일한 대곡(이 앨범은 이 곡을 제외하면, 5분을 넘어가는 곡도 없다) 'Meandres(Meanderings)' 는 아무래도 가장 기존의 Univers Zero 스타일에 유사한 곡이 아닌가 생각한다. 멜로트론을 이용한 빠르게 반복되는 드론 사운드 위에서 클라리넷, 첼로, 바이올린, 색소폰, 피아노, 잉글리시호른 등이 무조적인 솔로잉을 하다가 재즈와 클래식이 블렌드된 구성으로 합쳐지고, 그러다가 멜로딕하지만 확실히 어두운 분위기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모습은 - 물론 'Heresie' 같은 앨범에 비교할 것은 아니다. 사실 밴드는 "UZED" 이후 그런 건 한 적이 없었다 - 특유의 기괴함과 앞서 얘기한 이 앨범 특유의 도회적인 모습이 결부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밴드는 흘러간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근래의 활동에서 보통 가져오게 되는 노스탤지어를 거의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까지 보여진다.

그렇게 치면 항상 괴팍하고 자신의 흐름마저 항상 바꿔 왔던 Daniel Denis임을 생각할 때 이 앨범은 꽤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Falling Rain Dance' 나 'Mellotronic' 같은 곡은 Univers Zero의 어느 곡보다도 대중적인 곡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래 대중적인 부분과 그루비함을 결합시키는 것이 도회적인 것 아니겠나. 그리고, 이 밴드가 시종일관 보여주는 미덕이었지만, 이들은 지금 그런 오케스트럴한 편성을 가지고 그렇게 도회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밴드의 오랜 팬들보다는 이들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훨씬 적당할 앨범이겠지만, 밴드의 팬이더라도 앨범 자체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벨기에의 아방가르드 마스터들은, 확실히 그들의 음악을 들어 온 사람들보다 젊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