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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Marc Almond with Michael Cashmore - Gabriel and The Lunatic Lover

[Durtro, 2008]

Marc Almond(혹시나 해서 얘기하는 건데, 아몬드 아니다)는 별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Soft Cell 출신의 이 보컬리스트야(잠깐, 이 쯤 되면 헷갈리는 사람도 있을 텐데, Jon Mark와 Johnny Almond의 그 Mark Almond가 아니다) 차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이이지만, 그 시절이 그랬듯이 어느 정도 나른하면서도 퇴폐적인 보컬은 Soft Cell을 당대의 많은 신스 팝 밴드들보다도 더 선정적인 노선을 걷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뉴 웨이브/신스 팝 노선이 의외로 고딕 씬과 가까운 편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치면 이 조금은 당황스러운 콜라보도 이해는 간다. 물론 Michael Cashmore를 고딕 아티스트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Current 93이 그런 류와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는 건 더 어려울 것이다. 이 앨범이 19세기의 게이 시인이자 작가였다는 Count Eric Stenbock의 시를 컨셉트로 하고 있다는 점도 그런 부분과는 잘 어울리는 편이다.

말이 앨범이지 두 곡 뿐인 싱글인데(저 앨범명이 바로 곡명이다. 'Gabriel' 과 'The Lunatic Lover') Michael Cashmore가 모든 연주를 맡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음악은 사실 의외스럽다. Almond의 아카펠라로 시작하는 'The Lunatic Lover' 는 Cashmore의 하프와 기타가 주가 되는 곡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컨셉트에 걸맞는 섹슈얼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은 역시 Almond의 보컬이다. Currnet 93보다는 좀 더 클래시컬한 무드를 이끌어가지만 보컬과 어우러지는 액센트가 상당히 강한 편이다. 'Gabriel' 도 양상은 그리 틀리지 않다. 보컬의 존재감이 크기는 하지만 사실 이 곡에서 연주와 보컬은 상당한 거리감을 두는 편이다. 피아노 위주의 프레이징에 다른 악기들과 보컬이 덧붙여지는 셈인데, 결국은 Almond의 보컬은 상당히 씨어트리컬한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아무래도 이 싱글은 태생적으로 텍스트 위주의 곡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 텍스트 위주라고는 하나 Michael Cashmore가 능란하게 분위기를 잡아간다는 점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미 "The Snow Abides" 서부터(그럴 것도 아니라, Current 93에서 보여준 모습부터) Cashmore는 상당히 섹슈얼한 발라드에 강한 면을 보여 왔다고 생각한다. 'face so brilliantly pale ... corpse-like refined ... and subtle coloured hair' 식의 가사를 부르면서 명확한 서사를 의도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사운드가 이미지의 구현에 종속되는 것이 더 훌륭할 수도 있을 듯하다. 적어도 이들이 그런 면만큼은 확실히 살려 내고 있기 때문이다. Marc Almond가 섹시하게 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솔직히 좀 웃기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남말 할 처지는 아니다) 커버를 장식하는 Marc Almond의 초상과 Stenbock의 시들도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편이다. 이런 콜라보가 얼마나 주목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로도 Almond와 Cashmore는 일련의 공작들을 계속하는데, Almond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탐미적인 부류의 시작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