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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Various Artists - SeoulSeoulSeoul

[라운드앤라운드, 2012]

플로베르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나 "감정 교육" 을 좋아하는데(뭐 유명한 작품이니까) 물론,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냉소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묘사, 도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면모의 하나이겠지만, 파리에 가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작품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그 '일상 생활' 의 뒤에 깔리는 공간으로서의 파리의 설명이 더 흥미로웠다. 특히나 2월 혁명을 전후한 파리 시민들과 파리의 모습은 더욱 그랬다. 역사적 사건이 등장 인물들의 (소설에서의 묘사라기에는 참 드물도록 현실적인)일상과 기묘하도록 어울리는 건 아무나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이 나름 연애 소설이라면 연애 소설인지라(프레데릭 모로의 아르누 부인에 대한 사랑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보기 드물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제목에 '감정' 이 들어갔다 뿐이지, 정작 독자를 감정에 휩싸이게 하는 건 아닌 셈이다. 어쩌면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풀어나가는 파리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SeoulSeoulSeoul" 이라는 이 앨범의 구체적인 기획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테마는 물론 서울일 것이다. 현재 서울을 살아가는 27팀의 뮤지션이 서울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담은 앨범이다. 다들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모두 같은 동네에서 자라나고 살고 있기는 어려울 것인지라, 제각각 어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그네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울 시민' 으로서(물론 지금은 잠깐, 한 두 달 대전에 있을 예정이지만) 재미있게 느껴지는 얘기이기도 하다. 많은 메틀 팬들이 한국 인디 씬의 지형도가 (오버그라운드만큼이나)편향된 것은 아닌지 하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그런 볼멘소리가 진실인지 아닌지 여기서 얘기하고 있을 생각은 없고, 어쨌든, 그 '인디 씬' 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예부터 서울전자음악단 같은 베테랑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좀 더 명확한 컨셉트를 지닌 '빵 컴필레이션' 같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곡들은 뭐, 꽤 단정한 편이다. 꽤 애상적인 구석이 있는 얄개들의 '무화과 오두막' 이 있는가 하면, 김목인의 '열정의 디자이너에게' 는 (강력한 사운드는 아니지만)가시가 돋힌 데가 있는 곡이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서울사람' 은 듣다 보면 꽤나 능청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곡이다. 야마가타 트윅스터야 익숙하지 않다면 꽤 피곤할 수 있을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히 튀는 곡은 아니다. 나름 홍대의 셀러브리티 중 한 명인 오소영도 앨범에 친숙함을 부여한다. 그렇게 치면 이 앨범은 컴필레이션의 덕목은 꽤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뮤지션들을 그 색깔들을 나름 명확히 보여주면서도, '서울' 이라는 컨셉트가 상당한 일관성을 갖게 해 준다. 더욱이 어쨌든 이 곡들은 서울의 사람들과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곡들이다. 익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앨범이 너무 클리셰적이라고 얘기하는 평들도 꽤 있는 것 같다.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과연 서울 사람들이 서울에서 겪는 팍팍한 일상이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있었는지, 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앨범은 플로베르가 했던 것처럼 도시 자체에 대한 얘기를 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정말 그 도시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소박한' 인생들의 얘기만을 하는 것 같다. 플로베르가 모로의 애정 행각을 묘사하면서 집어넣는 실소를 자아내는 모습, 내지는 그런 서사를 앨범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이 앨범은, 컴필레이션답게 '다양한' 면모를 일견 보여주면서도, 앨범을 지배하는 서사는 좀 지루할 정도로 일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건조하게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마천루에 대한 찬양 같은 얘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고, 가끔은 더 솔직한 모습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도시로 인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건 분명하지만. 고도의 기술과 발전을 상징할 깎아지른 듯한 높이의 건물들이 사람들에게 정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인가?(만약 그렇다면 미래파들은 정말 바보였음에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이 앨범에서 정작 가장 솔직한 곡은 오!부라더스의 '서울 못난이' 일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에 빠져 있을 생각을 하지 않는 곡이기 때문이다. 뭐, 꽤 괜찮은 앨범이고, 더 재미있는 앨범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앨범이 '서울' 을 얘기한다는 목표에서 기획된 것이라면 꼭 성공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앨범의 참여 뮤지션들마저, 향수를 걷어내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도시 풍경을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도, 삶은 팍팍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