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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Marillion - Live from Cadogan Hall

[Eagle Records, 2011]

Steve Hogarth가 마이크를 잡은 Marillion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사실 과격하게 말한다면 Fish가 떠난 이후 Marillion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밴드에 가깝다. 적어도 대부분의 청자들의 반응을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다. Fish 시절의 네오 프로그레시브를 좋아하는 이들은 (물론 Steve Hogarth가 들어온 이후도, 밴드는 여전히 프로그레시브하지만)그 이후의 앨범을 선호하기 어렵다. 나도 "Misplaced Childhood" 같은 앨범들을 기대하고 있는지라 그런 부분은 사실 납득이 간다. 다만, 그렇더라도 가끔은 이 밴드에 대한 근래의 홀대는(물론 홀대는 부적절한 단어다, 만, 난 이들이 좀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해 보이는 때가 있다. 솔직히 Porcupine Tree가 근래 프로그레시브 밴드로 인정받는 만큼은, Steve Hogarth가 있는 Marillion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평가의 부분은 열려 있는 부분이니 그런 얘기를 고집할 생각은 없는데, 이 밴드의 음악을 네오 프로그레시브라고 부르기에는 불만이 있을지언정 이들의 사운드가 후대의 많은 조류들을 얼마나 잘 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일단, Steve Hogarth는 멋진 보컬리스트이다.

이 앨범은 "Less is More" 투어의 마지막 날, 런던의 Cadogan Hall에서 있었던 공연을 담은 것이다. "Less is More" 앨범은 밴드의 기존의, Steve Hogarth가 마이크를 잡았던 곡들을 어쿠스틱으로 재녹음한 앨범이었다. 말하자면 팬서비스에 가까웠던 앨범인데,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팝적 센스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밴드는 록은 물론 트립합이나 슈게이징 등 많은 요소들을 최근의 앨범에서 시도해 왔는데, 어쿠스틱 편곡이라는 것은 그런 부분들을 걷어 내고 곡의 뼈대만을 단정하게 정리해서 보여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앨범도 덕분에 어쿠스틱 라이브의 형태를 취하고, 특히 1CD는 "Less is More" 의 모든 곡을 그대로 연주한다(보너스트랙인 'Cannibal Surf Babe' 만 빼고). 이런 식의 편곡이 원곡과 다른 목소리로 곡을 재현하였음은 물론이다. 록적인 면모가 상대적으로 강했던 "Anorakphobia" 앨범의 수록곡들, 예를 들면 'This is the 21st Century' 같은 곡은 트립합적인 사운드가 지워지면서 좀 더 강한 톤의 발라드로 재현되었다. 좀 더 극명한 변화는 'Hard as Love' 나 'Interior Lulu' 이다. "Brave" 와 "Marillion.com" 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무릎을 칠 법한 편곡이다. 2CD는 "Less is More" 와는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역시 밴드의 기존 곡들을 어쿠스틱으로 편곡한 라이브이니 큰 차이는 없다(그렇지만 일렉트릭 기타가 등장하긴 한다).

덕분에 앨범은 이 대형 밴드의 기량이 십분 드러난다. 사실 이 앨범의 연주는 그렇게 단촐하지는 않다. 어쿠스틱이라지만 밴드는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해서 편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운드의 빈틈을 메꾼다. 실로폰이나 덜시머, 글로켄슈필, 셀레스테, 오토하프, 파이프오르간, 차임벨 등 다양한 퍼커션 등은 - 퍼커션 정도만 뺀다면 - 종래 밴드의 음악에서 흔했던 악기들은 아니다. 이 새로운 연주들이 곡을 풍성하게 하면서 곡에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하고 있다. 앞서 얘기한 곡의 변모들이 그러하다. 아무래도 가장 고생하는 것은 자기 파트 말고도 위의 악기들을 함께 연주하고 있는 Mark Kelly와 Pete Trewavas일 것이다. 다행히도 워낙에 잔뼈 굵은 뮤지션들인지라 그러면서도 삐끗하는 부분은 없다. 하긴 한두 번 연주해 본 곡들도 아닐 것이다. 

아울러 이 앨범은 Marillion이 어디까지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분류되지만, 또한 뛰어난 팝 밴드이면서 뛰어난 '모던 록' 밴드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하던 시기의 Radiohead를 분명히 의식한 사운드였지만 이를 마이너 카피로 떨어뜨리지 않고 나름의 스타일로 만든 그 곡들이 꽤나 서정적인 뼈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그 자욱한 사운드를 걷어내니 드러남을 보여주는 공연, 이라고 생각한다. Steve Rothery 특유의 서정성 짙은 멜로디가 거의 모던 포크에 가깝게 재현되는 모습도 꽤나 정갈하다. 따지고 보면 이런 게 정말 소위 '힙스터' 들의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Marillion이야 그런 '힙한 음악' 들과는 달리 요새는 인기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간만에 듣는 이 밴드의 라이브 앨범이 익숙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지나친 인상비평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Hogarth 시절을 정리하는 의미의 라이브 앨범이기도 할 것이니, 이런 평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ost script :
이 앨범은 CD 외에 DVD로도 발매되었다. 아무래도 후자가 더 잘 팔리는 듯하다. 

 

Marillion - You're 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