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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al of the Left/Writings

Punk and Terrorism

가끔 영어 공부 반 재미 반 해서 보는 웹진 중에 Pop Matters가 있다. 작년 말에 본 글이었으니 별로 오래되지는 않았다. "25 Up:Punk's Silver Jubilee" 라는 글이 있었다. 대충 우리식으로 해석하면 25주년 맞이 펑크의 은빛 기쁨 정도로 얘기가 될 거다. 25주년이라는 건 아마도 Sex Pistols가 앨범을 낸 뒤 25년이 흘렀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을 거다. 이 글을 내가 왜 얘기하고 있는고 하니, 아마도 9월 11일 미국 무역센터 테러의 영향이 있으리라고 보지만, 특이하게도 테러리즘에 젖줄을 댄 런던 펑크와 북아일랜드 과격파(IRA를 뜻하는 듯)를 미학적인 시각에서 비교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글과 같이 당연히, 내용은 둘이 어떻게 다르기 때문에 따라서 펑크는 위대하고 북아일랜드 과격파는 아니다......정도이다. 이 정도면 에반게리온을 일본의 입시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쓴 모 평론가의 독창성에 맞먹는지 않는가?

생각해 보니, 테러가 일어난 곳은 뉴욕이었지만, 그 응징에 미국만큼 침튀겨 가며 지지를 보내 온 국가가 있었으니 토니 블레어의 영국이었다. 하긴, 영국도 미국만큼이나 테러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나라이다. IRA가 테러를 계속해 온 것이 어디 한 두해였던가. 블레어 총리가 집권 뒤 거의 맨 처음 한 일이 북아일랜드 신페인당과의 협상이었던 걸로 기억나고 있다. 거기다 지난 12월 3일(미국의 아프간 공격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찌그러져 버렸는데) 버밍엄 차량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이 사건의 주도자가 IRA였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영국의 테러에 대한 경계는 가히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다. 어디 IRA만인가? 미국과 함께 가장 이슬람권을 몰아붙인 나라인 덕분에 가시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슬람권에게서도 곱지 못한 시선을 받고 있는 나라가 영국이 아닌가.

런던 펑크와 IRA는 분명 70년대 말 영국 최고의 뉴스거리였을 것이다.(안 살아봐서 장담은 못하는 일이지만, 우리의 경우 예전 삐삐롱스타킹 등의 사건이 얼마나 이슈가 되었는지 생각해 볼 때) 여왕의 사진을 마구 망쳐 놓고 그 사진을 싱
글 앨범 커버로 번듯하니 세워 놓으며, "God Save The Queen" 와 같은 테러 선망적인 언사를 행하고, 심지어 군주제의 무정부주의로의 전환마저 외쳤던("Anarchy In The U.K") Sex Pistols와 함께 북아일랜드 테러리스트들의 사진들이 영국 유수의 언론들을 도배했다. Pop Matters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이들 런던 펑크 군의 모습과 북아일랜드 테러리스트들의 모습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것이다. 필자였던 마이클 스티븐스(Michael Stevens)는 이런 이미지의 동질성을 테러리즘에 대해 펑크와 북아일랜드 테러리스트 양자가 공유하고 있는 이념적 기반 위에서 일군의 프로보(Provisional IRA)들이 펑크 룩의 이미지들을 차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경제가 거의 파탄나 IMF 신세까지 졌던 70년대 영국의 청년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테러리스트 또는 펑크 로커라는, 분노로 가득 찬 세력들이 등장했다. 어째서 이 두 가지 모습이 동시에 같은 상황에서 나타나게 되었는가? 스타일로서의 정치학이 펑크에서는 가능했지만, 테러리즘에서는 불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스티븐스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의 차이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 번도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삶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영국의 청년들과 거의 튜더 왕조때부터 계속되어 온 정치 분리주의, 게릴라 전, 무력 항쟁으로 점철된 역사를 감당해 왔던 아일랜드의 청년 세대는, 사회적, 계급적 소외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테러리즘을 끌어 들였지만, 그 결과물은 같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테러의 경험이 없는 영국 런던 펑크가 그 이미지에 매혹되어 폭동 선동가를 양산, 부재하는 아나키(anarchy)를 낭만화했다면, 테러와 갈등으로 점철된 북아일랜드의 펑크는 아나키 낭만주의 자체를 거부하고 북아일랜드 테러의 현실을 지지하는 것으로 서로를 차별화하게 된다. 아무리 영국의 펑크 밴드 - 심지어 The Clash와 같은 밴드마저도 - 들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하더라도 이는 아일랜드 민중들에게는 조롱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진짜 아나키(Anarchy)를 몸소 체험하고 있던 청년들이, 무대에 서서 이상으로서의 아나키를 울부짖고 있는 영국 펑크 밴드들이 어디 예뻐 보였겠는가. Sex Pistols 노선을 따르는 펑크 밴드를 그래서 아일랜드에서 찾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Sex Pistols를 따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변절(sellout)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Stiff Little Fingers를 예외라고 말하는가?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기자 고든 오길비에 의해 반쯤 조련된 이 밴드는 북아일랜드 출신이었지만 영국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였고, 이 밴드를 "북아일랜드 청년들의 분노" 정도로 영국에서는 소개하고 있었으니, 영국에서는 '나이롱' 북아일랜드 밴드를 알고 있었던 거나 다름 없었다. (물론 그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Alternative Ulster"같은 곡은 정말 좋다, 하지만 그 곡도 영국적인 펑크 곡임에는 틀림없다)

스티븐스는 그 다음으Undertones와 Gang Of Four에 주목한다. Undertones의 음악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IRA나 테러 등과는 거리가 정말로 먼, 일상 생활을 그린 펑크인 것이다. 영국적인 펑크의 관점에서는 변절로 찍힐 만한 음악이다. 하지만, 오히려 아일랜드 펑크에서는 그렇지 않다. 테러리즘과 위협적인 프로퍼갠더 안에서 살아가는 아일랜드 청년들에게 있어서 Undertones가 이야기하는 일상적인 삶은 가장 절박한 희망일 수 있는 것이다. 꽤나 역설적인 것이다. 사회적 부조리나 폭력을 형상화하는 영국식 펑크는 정작 아일랜드에서는 소용이 없고, 행복한 일상을 꿈꾸는 펑크가 오히려 효과가 있다니! Gang of Four는 더 나아가서, 뉴 웨이브를 받아들인 펑크 밴드이다. 사운드적으로도 엄청난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겠는데, 거기다 이들은 일상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Anti-Terrorism을 외치는 밴드이다. '경찰이나 IRA나 폭력적인 것에서는 그놈이 그놈이더라' 라고 말하던 밴드라는 것이다. Stiff Little Fingers 등을 통해 아일랜드의 테러리즘을 낭만화하던 영국에 대한 비판과 그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펑크 키드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되는 것이다.

좋다,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못내 아쉬운 점은 있다. 북아일랜드 펑크나 런던 펑크(굳이 얘기를 하자면 초기 런던 펑크가 되겠지만)를 테러리즘을 음악에 집어넣었다는 동일성에서 비판하면 좋았을 텐데, 역시나 스티븐스는 평론가다. 미학적 반동 - 이에 대해서는 Progressive Rock과의 비교도 필요할 텐데, 이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다 - 으로서의 런던 펑크는 '스타일'과 '허세'라는 통로를 거쳐 테러리즘을 '메타포' 로서 받아들인 반면, 북아일랜드 펑크는 위협으로서의 테러리즘을 확장하기 위한 도구로 펑크를 전락시켰다는 점에서 이 둘을 분리한다. 영국 펑크가 테러와는 무관한 세계관으로서의 테러리즘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문화적 밴덜리즘이었다면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기까지의 북아일랜드 언더그라운드 펑크는 자국 내 구교도는 물론 세계의 아일랜드 이민들로부터 테러리스트 단체 기금을 얻어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선전가였다는 것이다. 양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 기금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돈이다.

대중 예술 양식이란 그것이 속한 사회에 부재하는 것을 메타포로서 드러내야 한다는 입장에서 지난 30여 년 간 북아일랜드 언더그라운드 펑크 테러리스트들이 이룬 것은 동족 상잔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스티븐스의 결론은 살펴볼 때, 단순한 문화 담론 이상의 의미이다. 국제적인 테러, 그리고 25주년을 맞은 펑크 무브먼트, 이 둘이 절묘하게 겹치면서 그 의미가 뭔가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는 의심의 해소를 위해 반 테러 근본주의를 엮어내는 영국의 초조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씹는다면, 이런 문화순수론적 주장이 현 영국의 딜레마에 대해 '미학적 거리감' 이상의 현실적인 타당성을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도구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서 현실을 변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06년 말에 썼던 글의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