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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Down in June - Covers... Death in June

[Nerus, 2008]

세상에 별 별 트리뷰트 앨범이 다 나오는 마당에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DIJ의 트리뷰트 앨범도 이제 나올 때가 된 거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예전에 Palace of Worms에서 "Heilige Tod" 라는 앨범을 꽤 괜찮은 라인업으로(Kirlian Camera나 In My Rosary, Deutsch Nepal 등)낸 적이 있지만 - 그런데, 사실 그 앨범은 별로였다 - , Douglas P. 가 그 앨범은 자신의 허락 없이 나온 것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바 있으니, 정상적인 앨범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Douglas처럼 에고가 강한 사람이 NER 말고 다른 곳에서 트리뷰트 앨범을 내도록 허락해 준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Albin Julius나 Boyd Rice 같은 이들이 그런 작업을 추진한다면 모르겠으나.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어찌 되었든 DIJ의 트리뷰트 앨범이라 해야겠지만(밴드 이름부터가 티가 많이 난다) 다른 뮤지션들의 해석이라기보다는 DIJ의 전문 트리뷰트 밴드의 결과물이니, 처음에 얘기한 트리뷰트 앨범과는 차이가 있다. 거기다 레이블도 보아 하니, 이건 Douglas P. 허락을 안 받지는 않았나 보다.

이 3인조 스웨덴 친구들의 트리뷰트는 그 덕분인지, DIJ의 레플리카 수준에 그치지 않을까 했던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 친구들은 13곡의 클래식으로만 이루어진 앨범인지라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앨범을 살 만한 사람이라면, DIJ의 유명 곡들 정도는 대략 알고 있을 것이니)을 깨뜨려 준다. 밴드는 DIJ에 대한 분명한 리스펙트를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스타일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일렉트로닉스/노이즈는 물론, 소위 인디 팝, 펑크 등의 스타일들을 DIJ의 그것과는 '다른 지점에서' 시도한다. DIJ는 펑크 밴드로 시작해서 '네오포크' 라 불리지만 단순히 포크 뮤직을 하는 이들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 네오포크라는 용어 자체가 사실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 , DIJ의 유산을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고 있다고 해도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과가 예상보다도 훨씬 새롭게 들린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들은 DIJ의 음악에 다른 요소들도 시도한다(특히나, 'Hollows of Devotion'. 아마 이 곡은 내가 들어 본 가장 흥미로운 트리뷰트 곡의 하나일 것이다). 이는 아무래도 이 친구들이 원래 Baby Blonde and the Downs라는 얼터너티브 포크 밴드 출신이기 때문에 그러한 면이 있을 것이다. 전술한 'Hollows of Devotion' 은 내가 듣기에는 거의 컨트리에 가깝게 들리는 면도 있다. 'Heaven Street' 같은 곡은 더욱 노골적이다. 이 장르에서 강력한 퍼커션 소리를 듣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 정도의 '테크노' 를 DIJ의 곡에서 들어 본 기억이 내게는 없다. 밴드는 상당히 리드미컬한 부분을 많이 시도하는 편인데, 원곡에 더해진 재즈 풍의 피아노 연주는 더욱 그렇다. 피아노는 건반 악기이지만, 타악기이기도 하다는 걸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지적할 것은 Erica Li Lundavist의 여성 보컬이다. 나는 DIJ의 음악이 기본적으로 꽤나 '남성적이라' 고 생각해 온 편이었는데, 이들은 남녀 혼성 보컬을 사용해서 DIJ의 곡들을 구현한다. 부드럽다기보다는 '묵직하다' 는 느낌이 더 어울릴(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Douglas P. 의 목소리와는 달리 이들은 좀 더 밝은 분위기로 곡을 이끌어 나가고(보컬 톤 자체부터가 차이가 크다), Erica의 보컬은 특히나 그렇다. 'But, What Ends when the Symbols Shatter?' 같은 곡에서는 female-fronted 모던 록에서나 나올 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과장 좀 섞어서 거의 Cardigans 수준) 그렇지만 DIJ를 커버한다는 것 부터가 그리 나긋나긋하기만 한 분은 아닐 것이다. 'Fields of Rape' 에서의 면모는 그에 비하면 황당할 정도로 음울한 편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어쨌든 DIJ의 클래식들의 '커버' 를 모아 놓은 앨범이지만, 이 정도 되면 사실 '커버' 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밴드에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맞는데, 그러기엔 원곡을 깎아먹기만 하는 다른 커버들과 동일선에 놓이는 느낌이 들 정도이니. 이 정도면 원곡을 거의 새로이 재창조한 수준이다. (어떻게 'Kameradschaft' 를 듣고 이렇게 바꿔 놓을 생각을 했을까) DIJ의 팬이라면 사실 별로라고 해도 구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앨범은 DIJ를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네오포크에 대해서 접해 본 적이 없더라도 좋아할 수 있을 앨범이다. 루머에 따르면, Down in June의 다음 앨범은 무려 Douglas P. 와 같이 작업할 것이라고 하던데, 사실 약간은 황당하게도 들릴 수 있겠지만, 앨범은 그게 흰소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확실히 설득시킨다(사실, Douglas가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로 곡을 연주하려 할까 싶기도 하지만). 매우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