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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Kayo Dot - Choirs of the Eye

[Tzadik, 2003]

밴드 얘기를 하기 전에, Maudlin of the Well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Bath" 와 "Leaving Your Body Map" 은 그 해에 들었던 앨범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앨범이었다. 스스로를 'astral metal band' 라 칭하던 이들이니 만큼, 뭐라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음악임은 분명했는데, 두 장의 (사실상 한 장과 같은)앨범에서 밴드가 보여준 모습은 일반적인 프로그레시브-데스 메틀과는 분명히 틀린 모습이었다. 비단 모던 록의 느낌이 강하게 나서가 아니라, 밴드는 메틀 사운드를 사운드의 텍스처 정도만 제외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기 시작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밴드가 Dark Symphonies를 나와서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Tzadik으로 옮긴 것은,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Tzadik이 John Zorn의 레이블이라는 걸 생각하면 좀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 밴드는 어떻게 변한 것인가? 사실 이 앨범의 '질감' 자체는 Maudlin of the Well과 크게 틀리지 않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곡을 구성하는 모습은 이전보다 좀 더 예상하기 어렵다. 거의 포스트록에 가까운 부분도 있지만, 밴드가 명확하게 20세기 초반, 내지는 19세기 후반의 괴팍한 '클래식' 을 의도한 것이라고 볼 만한 부분도 나온다. 특유의 앰비언트 사운드에서는 Elgar를 의식할 수도 있겠고, 괴팍한 코드 보이싱 등에 있어서는 Bartok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물론 밴드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과 정면으로 비교하는 것은 좀 어패가 있겠다만, 분명히 밴드는 '클래시컬 무드' 를 가지고 있다. 켜켜이 쌓여진 사운드들이 이를 단박에 알아채기는 어렵게 만들지만, 분명히 그렇다. 다만 요새 흔히 '클래시컬한 대중 음악' 이라 표현할 때의 의미와는 틀릴 뿐이다.

그래서인지 밴드가 계속해서 엮어 나가는 테마들을 뒤쫓는 것만으로도 이 앨범은 상당히 피곤하다. 당장 첫 곡인 'Marathon' 에서 어떻게 곡이 이어져 나가는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처음에는 꽤나 어려울 일이다. 메틀 리프에 이어지는 앰비언스, 그에 뒤이어지는 트레몰로가 끌고 나가는 테마는 앨범 마지막의 'The Antique' 를 들어야만 분명히 이해될 것이다. Maudlin of the Well의 '발라드' 곡들을 연상케 하는 'A Pitcher of Summer' 를 지나가면 'Manifold Curiosity' 가 나온다. 아마도 여기가 앨범의 정점일 것이다. 밴드를 Maudlin of the Well과 가장 명확하게 구별짓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하는데, 헤비한 클라이맥스도 나오기는 하지만 여기서의 밴드는 이미 메틀 밴드라고 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사운드의 가벼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적 분위기의 바이올린이나 역시나 난폭한 트럼펫, 계속해서 앨범의 기저를 훑고 지나가는 앰비언스가 록 밴드로서의 제 악기들을 하나로 통합시켜 버린다. 가장 헤비한 부분에서도 앨범은 가장 정적인 요소를 변증법적으로 통합시킨다. 그래서인지, 앨범은 그 볼륨에 비해서는 정적이다. 청자는 정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앨범 막바지 피아노의 스타카토가 그 두터운 사운드를 뚫고 들어올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피카르디 3도로 곡을 마무리짓는 모습 정도는 그 사이에 보여주는 여유이다.

덕분에 앨범은, 분명히 가사도 있고, 그 '정적임' 이 어느 정도는 테마를 가시적으로 만들어 주는 면도 있지만,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괴팍하다고 말했듯이, 시종일관 변화하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다가도 앨범을 끝맺으면서는 앨범이 어떠한 방향성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방향성을 빗나가서도 무던히도 많은 길을 보여준다. 앨범은 수많은 빛나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따라가는지는 열려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길을 따라가는 동안 밴드는 청자를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것이다. Kayo Dot의 이후의 앨범들도 의미심장하지만, 적어도 가장 힘이 있는 앨범은 이 앨범일 것이다. 그리고 (과장 없이)내 생각에는, 이 앨범은 '클래식' 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방향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앨범은 (앞으로 어떨 지는 모르지만)21세기 대중 음악의 '클래식' 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장 나는 이 앨범을 메틀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았다) 이 포스팅이 어떤 음악을 얘기하는 지 모르겠다면, 보통 같으면 내 필력에 탓을 돌리겠지만, 이 앨범에 대해서는 그렇게만은 말 못하겠다. 이 앨범은, 괴물이다.

post script :
팬심이 많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반복하건대, 이 앨범은 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