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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Metal

Vulcano - Bloody Vengeance

[Rock Brigade, 1986/Cogumelo, 1999/2009 reissued]

남미 중에서도 브라질이 특히 음악 강국이라는 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공인되는 사실일 것인데, Sepultura가 참 많이 명성을 얻어서 그런지(물론 Sepultura의 좋았던 시절은, 그런 명성을 얻기에 충분히 훌륭했다) 그 시절 브라질의 다른 장르들만큼이나 훌륭했던 헤비 뮤직 씬은 'Sepultura를 배출했다' 는 한 마디 정도로 그냥 정리되는 감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Sepultura를 80년대 초-중반 브라질 헤비 씬 최고의 밴드들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은 물론 맞겠지만, 적어도 Sepultura 만큼 대접을 받아야 할 밴드가 분명히 존재했다. 물론 그런 밴드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I.N.R.I" 의 Sacorfago일 것이고, 이제는 컬트가 되어 버린 "Warfare Noise I" 의 밴드들이 그 다음(Chakal, Mutilator, Holocausto) 정도일 것이지만, Vulcano 또한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Sepultura의 초기와 Sacorfago의 사운드가 블랙스래쉬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들은 거의 남미 익스트림메틀 씬의 첫 밴드 정도로 기억되는 이들임을 얘기해 둔다.

아무래도 서구 밴드보다 돈은 더 없었을 것이다(서구 밴드라고 돈이 있었을 것 같진 않지만). 데뷔작인 "Live!"(물론 라이브 앨범이다) 이후 두 번째 앨범이지만, 스튜디오 앨범으로는 이게 밴드의 사실상 첫 앨범이다. 배고프게 살다가, 그나마 후배들이 좀 빛을 보면서 선배 밴드가 같이 기회를 얻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물론 이 앨범도 24시간만에 녹음이 끝나 버렸다 하고, 그리 훌륭한 음질은 못 된다(이 시절 이런 음악에서 그 점을 문제삼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사실 이 앨범에서도 이 점은 장점이기도 하다). 비영어권 국가의 배고픈 뮤지션이다 보니, 가사에는 영어 문법이 틀리는 곳도 꽤 많은 편이다. 1986년은 가장 매끈하고 빠르게 뽑혀 나온 스래쉬메틀 앨범 중 하나인 "Reign in Blood" 가 나온 해이니, 이런 앨범이 과연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인지는 의뭉스러운 데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식의 조악함을 고려하지 않고 말한다면, 이 앨범은 86년 스래쉬메틀의 걸작으로 반드시 꼽혀야 하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Dominios of Death' 부터 "Reign in Blood" 같은 동시대 앨범이 그랬듯이 매우 빠른 템포로 거의 일관하는 사운드인데(더블베이스 드럼의 배치는 좀 생뚱맞게도 느껴지긴 한다만) 곡의 후반부에서 템포 다운되면서 전형적인 스래쉬 리프가 등장하는 면모가 상당히 매끈하다. 사실 스래쉬메틀에서 제일 흔히 볼 수 있는 곡 구성이지만, 어쨌던 이런 면모가 보통 얘기하는 '쌍팔년' 보다 더 이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음을 가르쳐 준다. 'Spirits of Evil' 같은 곡이 앨범에서 가장 블랙스래쉬에 가까운 트랙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뮤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트레몰로 위주의 리프도 그렇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름이 Angel인)보컬 또한 Venom 같은 밴드를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는 날카로운 스크리밍을 들려주기도 한다. 나름대로 서사적인 구성을 보여주는 타이틀곡에서 생각나는 것은 동시대의 스래쉬메틀 밴드가 아니라, 90년대에 등장한 유럽의 블랙메틀 밴드이다. 조악하기는 하지만 리버브를 많이 사용하는 연주는 이 앨범에 기묘한 분위기를 덧칠하기도 하는데,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Rotting Christ의 데뷔 시절의 사운드가 생각나기도 했다. 가끔 이들을 진정한 블랙메틀 1세대 중 하나라고 하던 몇몇 넷상의 의견들은, 그렇게 본다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을 어떤 스타일로 규정짓는 것도 조금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실험적인 시도를 굳이 했다는 것이 아니라(사실, 'Bloody Vengeance' 같은 곡은 86년이라는 시대를 생각한다면 실험적인 면모가 없지 않다만. 4분 넘어가는 블랙스래쉬는 드문 편이다. 참고로 이 앨범은 러닝타임이 23분 남짓 되는 수준이다) 이들은 동시대의 스래쉬메틀로 분류되던 밴드들 중, 스래쉬의 '매끈함' 이 강조되기 이전에 블랙/데스메틀로 이행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런 류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Sepultura의 "Morbid Visions" 같은 앨범이 되겠지만, 적어도 Vulcano의 이 앨범만큼 이 시절 앨범 중에서 거친 것은 '거의' 없었다. 밴드의 이후 앨범들이 확실히 이 앨범만큼의 활력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생각하면(하긴 그러니 요새는 거의 얘기되지 않겠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이 앨범에서 Angel의 보컬은 가장 빛나던 시절의 Venom 이상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앨범이다.

post script :
생각보다는 재발매가 잘 되는 앨범이긴 한데, 2009년 재발매반은 이들의 라이브 실황 DVD를 보너스로 수록하고 있으니, 굳이 오리지널 LP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그 편이 나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