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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ollution/Non-Metal

ROME - Flowers from Exile

[Trisol, 2009]

개인적인 생각인데(뭐 반드시 개인적인 건 아닐지도), ROME는 적어도, "Masse Mensch Material" 부터는 최고의 네오포크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밴드의 장점이라면, 참 정력적으로 앨범을 계속 내 오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에 "Nera" 가 나온 이후 작년까지 밴드는 여섯 장의 앨범을 냈으니, 아직 2012년 초임을 생각하면 매년 꾸준히 앨범을 내 온 셈이다. 그러면서도 밴드는 포크에 기반하면서도 (많은 네오포크 밴드들이 그렇긴 하지만)다양한 요소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충격적인 방법론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내는 건 보통의 이야기꾼이라면 어려울 것이다. 이런 꾸준함과, 이미 "Masse Mensch Material" 등의 앨범에서 보여 준 출중함은 사실상 ROME을 이끌어 가는 Jerome Reuter가, 생각보다 꽤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준다. 드라마를 굴릴 줄 안다고 할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 "Masse Mensch Material" 은 2008년 최고의 네오포크 앨범 중 하나였다는 정도를 덧붙여 둔다.

2009년에 나온 이 앨범은 겨우 1년 남짓한 기간만에 나온 새 앨범이었지만, "Masse Mensch Material" 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는 게 눈에 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Masse..." 는 물론이고 ROME가 그 때까지 낸 어느 앨범과도 비슷하지 않다. 하긴 밴드는 앨범마다 조금씩 다른 스타일로 각자의 이야기를 이끌어 냈으니 이해하지 못 할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 앨범은 전작들보다도, 하나의 이야기를 매우 다양한 어조로 풀어내는 편이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함인지 밴드는 가사에 네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이런 얘기는 풀어내기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어조를 사용하면서, 그 만큼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그 결과가 꽤나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거의 제멋대로일 정도의 희망을 담아내는 'Odessa' 과 'Flowers from Exile' 의 황량함은 사실 꽤 상반되는 편이다. 굳이 서로 다른 곡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Flowers from Exile' 같은 곡은 그 자체로 서로 상반되는 분위기가 병치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The Secret Songs of Europe' 나 'To Die Among Strangers' 같은 곡들인데, 이 곡들이 그나마 좀 더 원시적인 리듬감을 가진, ROME가 종래 들려주던 포크의 스타일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앨범은 전작들보다 좀 더 폭넓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Nick Cave와 David Gahan을 짬뽕한 것처럼 들리는 Jerome의 감성적인 보컬과 Patrick Damiani가 만들어내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도 일반적인 네오포크 밴드의 그것에 비해서 좀 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에는 일반적인 노래 - 코러스 - 노래의 구성을 거의 취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전작에서 아쉬운 점이었던 자기복제의 버릇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도 이 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 상반되는 요소들을 담아내기 위해서 사운드는 꽤나 두터워지고, 그 두터움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것도 Patrick의 역할이었지 싶다. 'The Secret Song of Europe' 의 절제된 솔로와 매끄럽게 배치된 호른 섹션이 주된 멜로디를 전혀 해하지 않으면서 존재를 드러내는 모습이나 'To Die Among Strangers' 의 바이올린 연주 뒤에서 가볍게 연주되는 기타 등은 밴드가 얼마나 세심하게 각각의 음을 배치했는지를 보여준다. 혹시 Patrick Damiani라는 이름이 익숙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Patrick Damiani가 Enid(그 프로그레시브 밴드 말고, Napalm에서 앨범을 냈던)의 풍성한 사운드를 구축했던 기타리스트였다는 점을 언급해 두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때문인지, 이 앨범에서 비교적 빈약하게 들리는 곡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ROME의 원래의 스타일에 가까운 곡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곡들도 멜로디라인의 힘만은 분명하다.

뭐, 이런 것 때문에 이 앨범을 좀 기복이 있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이 보여주는 힘 또한 분명하다. Trisol 레코드는 ROME를 Leonard Cohen에 비교하면서 광고하고 있는데(크루너 보컬 때문일지도), 원래 레이블 광고문구라는 건 그리 믿을 게 못 되지만, 적어도 ROME에 있어서는 충분히 납득가는 얘기이다. 공격적인 편은 아니지만, 간혹 martial 풍의 리듬까지 나오는 앨범이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풍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앨범은 멋진 성과라고 생각한다. 너무 좋은 얘기만 쓴 것 같기는 한데, 그 만큼 청자를 감화시키는 데가 있다고 생각하시라. 나도 계속 들으면서 쓰는 거니까. 거친 사운드를 원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분명히 만족할 듯.

post script :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이름이 저렇다고 이탈리아 밴드는 아니다. 이들은 룩셈부르크 밴드이다. (이것도 역시 얘기했던 것임)



ROME - To Die Among Strangers